신앙인은 이분법적이지만, 예수는 원수·악인도 사랑하고 품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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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은 이분법적이지만, 예수는 원수·악인도 사랑하고 품으신다

입력
2022.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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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시편에 가득한 '권선징악' 메시지
윤리적 단호함 강조 목적일 뿐
다행히 절대자는 이원적이지 않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전달하는 재미와 감동에 흠뻑 빠졌었다. 우영우와 같은 어려움을 가지신 분이나 그 가족은 복합적 심경으로 보았겠지만, 많은 시청자에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제일로 꼽는 이 드라마의 묘미는 다른 데 있었다. 어느 인물도 절대 선이나 악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껏 우리에게 인기 많았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좀 질리는 점이 있었다. 늘 등장인물이 극단적인 선과 악으로 나뉘고 결론은 늘 권선징악이었다. 특히 악당은 끝까지 악랄하여 반드시 징벌을 받는데, 이때 주인공이 악을 징벌하려고 휘두르는 폭력은 늘 정당화된다. 물론 인과응보적인 권선징악은 전설이나 동화, 성서에서도 발견되는 구도다. 우리는 이런 이분법적 대립 가운데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통쾌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은 그렇게나 이원적일까? 면도날로 선을 긋듯 선과 악, 낮과 밤, 땅과 바다가 나뉘나? 그렇지 않다.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낮과 밤 사이에는 아름다운 저녁이나 새벽이 있다. 땅과 바다 사이에 있는 멋진 해변을 우리는 좋아한다. 우영우 드라마가 아름다운 것도 등장인물을 전형적인 선과 악으로 구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모술수 권민우가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징벌을 받는 꼴을 봐야 속이 후련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봄날의 햇살 최수연으로 인해 그는 착해지기 시작했다. 직설적인 권선징악에 익숙했던 시청자에게는 불편했을 수도 있다. 주인공 우영우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부당한 작업을 했고, 우영우 아버지는 샛길로 딸의 취업을 도모했으며, 친구 동그라미는 술 먹고 친척 어른에게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는 피고들에게도 동정과 이해의 여지가 있었다. 그들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었기에 사실 우리와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성경에서 가장 인기 많은 책은 시편이다. 장르상 지혜시라고 분류되는 시가 여러 편 있는데 제일 첫 장도 이에 속한다. 지혜를 가르치는 이 노래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과 그릇된 사람 이 둘로 명확하게 나누며, 그들의 운명 또한 이분법적으로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의 인생은 이렇다고 노래한다. "물길 곁에 심은 나무 같지요. 철 따라 열매 맺고 잎사귀 마르지 않는 나무이지요. 무엇을 하든지 성공합니다."(시 1:3, 새한글성경). 우리가 바라는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찰떡같이 표현했다. 나무가 심겼는데 물 곁 명당자리라서 계절의 변덕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소산은 절로 나오니 이런 복 받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반면에 악인은 그렇지 못하다. "그릇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릇된 사람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죄짓는 사람들은 올바른 사람들의 무리에 들지 못합니다."(시 1:4-5).

이 시편이 말하는 지혜는 삶을 이원적으로 투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실과는 좀 떨어져 있다. 이원론적 사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선 선과 악의 정의부터 논란거리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권선징악 같은 이원적 원리를 소망하는 듯하다.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이분적 구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새벽도 있고 저녁도 있지만, 우리는 하루를 낮과 밤이라고 배분하고 균형을 두어 안정감을 느낀다. 어떻게 우리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둘 중 하나에 속하겠냐마는, 이 이분법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단호한 윤리적 결단을 하도록 이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삶의 다원적 양상으로 인한 혼돈보다는, 순진무구한 흑백논리가 안정적인 교육적 출발이 될 수 있다.

신학적 올바름보다는 신앙하는 인간의 솔직한 반응을 노래한 것이 시편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선한 사람은 복 받기를, 남을 해치는 악인은 혼쭐이 난다는 지표가 사람에게 소망을 준다. 걱정하지 마시라. 원수도 사랑하시는 예수가 악인도 따뜻하게 품는다고 하신다.

기민석 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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