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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노동절 폭염

입력
2022.09.08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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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덮친 폭염 소식이 내걸린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홈페이지 화면. 홈페이지 캡처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덮친 폭염 소식이 내걸린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홈페이지 화면. 홈페이지 캡처


미국에 부임해 처음 맞은 노동절(9월 첫 번째 월요일) 연휴. 한국이라면 이맘때 더위가 물러가고 푸른 하늘을 즐기는 시기지만, 여기 캘리포니아에선 인생 최악의 더위를 경험했다.

5일 노동절 당일 캘리포니아 전역엔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덮쳤다. 길로이는 44.4도, 리버모어는 45.5도까지 치솟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할증이 붙는 요금제를 쓰는 탓에 ‘적어도 이 시간엔 절대 에어컨을 쓰지 않겠다’는 철칙을 세웠었지만, 이날만큼은 살기 위해 그 원칙을 접어야만 했다.

블랙아웃 사태를 우려한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전력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강제로 순환 단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전력 소비가 급증하며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폭염이 강타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8월 31일 한 시민이 소화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로 몸을 식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폭염이 강타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8월 31일 한 시민이 소화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로 몸을 식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올여름 유럽 폭염이나 이번 캘리포니아 사례에서 보듯, 날씨 기사에서 ‘사상 최고’라는 표현이 잦아진 것은 결국 인간의 활동이 자연의 평형조절 능력을 초월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최근 영국 가디언은 “1950년 이후 발생한 500여 건의 이상기후를 분석한 결과 71%에서 인간의 영향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폭염에 인간이 관여한 비율은 90%가 넘었다. 결국 인간이 문제를 일으켜 인간이 기후로 부메랑을 맞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 캘리포니아에선 탄소 배출에 책임이 큰 대기업들이 이미 탄소중립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대다수 빅테크들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RE100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애플ㆍ구글 등은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이에 비해, 제조업 국가 숙명상 탄소 배출을 피할 수 없는 한국의 준비 태세는 아직 미흡하다.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가 연내 RE100에 가입할 것이란 소식이 들리지만, 나라와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늦은 감이 있다. RE100을 두고 “실효성 없는 대안”이라거나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란 비판도 있지만, 기업이 참여하는 이런 노력마저 없다면 낭떠러지로 다가가는 속도를 절대 낮출 수 없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사상 최고’ 수준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사상 최고’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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