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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되고 있는 ‘바이털 진료’

입력
2022.09.07 05: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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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고난도 수술을 시행하는 흉부외과를 비롯한 '바이털 진료과' 의사들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 해마다 이를 진료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감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증·고난도 수술을 시행하는 흉부외과를 비롯한 '바이털 진료과' 의사들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 해마다 이를 진료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감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뇌출혈(뇌동맥류 파열)로 쓰러졌는데,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국내 최대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런 황망한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의료 현장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흉부외과ㆍ혈관외과ㆍ소아외과ㆍ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과 같이 직접 생명을 다루는 ‘바이털(vital) 진료과’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매년 급속히 줄고 있지만 수술 건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외과 의사가 이틀에 한 번씩 야간 당직을 설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아예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또한 외과 의사가 수술에만 매달리다 보니, 환자가 자신을 수술한 의사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퇴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외과 병동은 무의촌’이라는 ‘웃픈’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외과 전문의 지원자가 몇 년째 정원의 7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외과 전문의를 땄지만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동네 병원에서 일반 진료를 하는 의사도 1,000명을 넘어섰다. 외과 전문의가 제대로 충원되지 않으면서 전체 외과 전문의 6,275명 중 절반 이상이 50세가 넘는 ‘외과의 고령화’도 문제다. 이들이 은퇴하면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가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는 ‘수술 절벽’이 현실화될 우려가 높다.

소아외과는 더욱 심각하다. 놀랍게도 소아외과 전문의가 30여 명에 불과하다. 지난 달 광주광역시에 사는 아이가 충수돌기염(맹장염)에 걸렸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200㎞ 떨어진 대전 지역 병원까지 가서야 치료받는 일까지 있었다. 뇌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개두술(開頭術ㆍ클립 결찰술)을 시행해야 하지만 이를 치료할 혈관외과 분과 전문의도 최근 3년 간 19명만 배출됐다.

이처럼 외과 의사를 기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증 고난도 수술을 해야 하는데다 잦은 야간 당직 등으로 업무 강도는 높지만 의료 수가(酬價)는 크게 낮은 탓이다. 이번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목숨을 앗아간 뇌동맥류 파열의 경우 5~6시간 걸리는 클립 결찰술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고난도 수술인 클립 결찰술의 수가(377만 원)가 쌍꺼풀ㆍ코ㆍ턱 성형수술이나 지방흡입술, 초음파 리프팅 시술 수가와 비슷하다. 상황이 이런데 외과 의사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보건 당국이 생명을 다루는 바이털 진료과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바이털 진료과 의사들에게 적절히 보상하고, 고강도 근무 여건을 완화해줘야 한다. 또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료사고를 일정 부분 면책해주는 ‘의료 분쟁 특례법’을 제정해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바이털 진료과 의사들이 중증ㆍ응급 수술할 때 의료소송에 위축되지 않고 환자 생명만 바라보고 소신껏 할 수 있다. 낮은 의료 수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뿐만 아니라 별도의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의료의 꽃’으로 불리는 ‘칼잡이’ 의사를 살려야 의료가 산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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