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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더 넓어진 젠더 의식...다채롭게 빛나는 숨은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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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더 넓어진 젠더 의식...다채롭게 빛나는 숨은 고전

입력
2022.09.0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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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숨은 여성 작가 작품 발굴 활발
최근 색깔도 다양해져…국내도 마찬가지
전형적 페미니즘 틀 벗어난 '코펜하겐 삼부작'
버지니아 울프의 퀴어 면모 주목한 서간집
"시대 달라도 해소되지 않은 것 있다는 의미"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 을유문화사 제공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 을유문화사 제공

2017년 시작된 미투(Me Too·성폭력의 사회적 고발)는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전 세계 문단 역시 그 영향권에 속한다. 그 변화 중 하나가 여성 작가의 숨은 고전 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상징적 여성 문학인을 더 깊이 파헤치는 연구는 물론이고, 한 지역에 국한됐던 혹은 한 시대에 갇혔던 이들의 작품이 시공간을 넘어 다시 읽혔다. 5년여의 시간으로 그 흐름은 더 견고해졌고 갈래는 더 많아졌다.

지난달 국내 출간된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1917~1978)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은 기존 페미니즘 문학의 틀을 깬 작품이다. 덴마크에서는 1970년 전후 출간됐다. 작가의 유년기부터 서른 남짓까지를 회고하는 3부(어린 시절·청춘·의존)로 구성돼 있다. 그중 작가의 특징이 잘 묻어난 3부가 2019년에야 영어본으로 나와 세계 독자를 만나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의 간극이 있었지만, 그 강렬함은 퇴색되지 않았다.(1·2부는 1980년대 처음 영어 번역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지 않고 무엇도 주의·주창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지금보다 더 공고한 가부장제 시대에 꿈(시인)과 사랑을 얻기 위해 내달린,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작가 본인의 인생을 냉정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뿐이다. 오류와 불안에 노출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메시지 속에는 '진정한 여성 해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담겼다. 최원호 을유문화사 편집자는 "여성주의가 곧 정의이고 (작가는)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개념조차 강요일 수 있다는 일종의 (페미니즘적) 2차 성찰과 이 작품이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제약에서 벗어난 여성 서사를 보여준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가 2020년 역대 최연소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자가 된 배경도 이런 흐름과 통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큐큐 제공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큐큐 제공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는 페미니즘 논의와 함께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지면서 출간됐다. 이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가 1923년부터 1941년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선별해 묶어낸 책이다. 거의 20년간 연인이자 친구로 관계를 이어간 둘의 교류가 어떻게 버지니아의 문학 작품으로 승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신선함은 울프의 동성애자로서 삶과 문학에 보다 집중했다는 점이다. 그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영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대표 주자로 주로 조명됐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최성경 큐큐 대표는 "2년 전 울프 전기가 나오면서 주목받기도 했고 성소수자 이야기가 조금 더 편해진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E.M. 델라필드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이터널북스 제공

E.M. 델라필드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이터널북스 제공

젠더 문제를 무겁지 않게 다룬, 친근한 매력을 앞세운 작품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100년 가까이 꾸준히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이번에 초역된 E.M. 델라필드의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이다. 여성 작가 델라필드가 주간지 '시간과 조수'에서 매주 연재한 일기 형식의 자전적 소설을 묶은 책이다. 1929년 말 잉글랜드의 지방 소도시에 사는 여성인 '나'는 지적이고 현대적 여성의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궁색하다. 무뚝뚝한 남편과 말썽꾸러기 남매를 부양하며 소심하게나마 고정관념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말들을 써내려 간 일기는 현실감이 넘친다. 소소한 일상에는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와 여성의 참정권 투쟁이 막 결실을 보기 시작한 사회상 등도 보인다. 최 대표는 "그 시절 이야기가 낡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계속 호명된다는 것은 아직 배울 것이 있고 해소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여성 작가들의 고전 작품 재발견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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