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한 뉴퍼 회장, 특파원단 인터뷰
바이든, 9일 반도체 지원 법안 서명
“한미, 반도체 제조·디자인 협력 필요”
“미국은 전 세계의 모든 반도체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데려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균형을 다시 맞추려는 것뿐입니다. 한국, 일본, 대만 모두 (공급망) 취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공급망 균형을 가장 잘 재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새롭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존 뉴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국 특파원단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 행정부와 반도체업계의 정책과 향후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반도체산업 주도권을 놓친 뒤 겪은 어려움과 이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도 공개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사, 칩 설계 회사, 공구 및 재료 회사를 대표한다. 뉴퍼 회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간부를 거쳐 2015년부터 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뉴퍼 회장은 먼저 미국 반도체산업이 그동안 고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은 여기에서 더 이상 반도체를 충분히 생산하지 않습니다. 1990년 우리는 세계 반도체의 약 37%를 생산했지만 현재는 12%만 제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 땅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해외보다 25~30% 더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려고 앞다퉈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임을 해왔지만 미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천천히 우리의 반도체 제조 기반이 서서히 무너졌다”라고 설명했다. 최첨단 로직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가 모두 미국 밖에서 제조되는 것도 미국의 취약점 중 하나라고 짚었다.
결국 미국은 지난달 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총 2,800억 달러(약 380조 원) 규모 ‘반도체ㆍ과학법안’에 서명하면서 반도체산업 집중 지원의 칼을 빼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생산시설 신설과 확대에만 520억 달러(약 70조 원)를 투입하면서 반도체 공급망 회복을 넘어 산업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반도체ㆍ과학법에는 중국 견제 내용도 담겨 있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는 SK하이닉스 등의 고민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지원금이나 세제 혜택을 받은 기업은 중국 등에서 신규 시설을 짓거나 기존 시설을 확장하지 못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뉴퍼 회장은 “안전장치는 미 의회가 기술 정책에 있어 중국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다”며 “그것이 (법안에) 가드레일(안전장치)이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미국인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그 돈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의회가 안전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상무부와 다른 부처가 반도체지원법 시행 지침을 수립할 때 삼성이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미국 내 시설을 확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연성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은 미국 반도체산업 매출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 대한 접근과 공급을 줄일 경우 미국은 연구개발을 위한 자금을 보유하지 못해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나갈 수 없다는 게 미국의 딜레마다. 뉴퍼 회장은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며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 정책을 고려할 때 심사숙고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뉴퍼 회장은 미국과 한국 등의 반도체 산업 협력 방안도 제시했다. 미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비메모리반도체, 설계, 장비 등과 한국의 메모리 분야 강점, 제조 및 생산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대만도 미국에서 더 많이 생산·설계하기로 약속했다”며 “동질적인 경제로 유사한 입장을 가진 나라가 협력한다는 점에서 우리 공급망 강화의 미래는 밝다”라고 설명했다.
뉴퍼 회장은 5일부터 7일까지 한국을 찾아 산업통상자원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삼성ㆍSK 관계자를 면담한 뒤 일본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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