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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립운동, 온당한 지위 인정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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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립운동, 온당한 지위 인정받아야"

입력
2022.09.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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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 성균관대 교수, 독립운동 열전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책 독립운동 열전. 푸른역사 제공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책 독립운동 열전. 푸른역사 제공

“3ㆍ1 운동으로 일제의 감시가 심해진 이후에 이뤄진 독립운동은 곧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운동 대열에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분단의 기억이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인정하라고 쉬이 권할 수 없다. 다만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일제에 뜨겁게 맞섰다는 것은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에겐 외면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다. 최근 발간한 책 ‘독립운동 열전’에서 사회주의 운동가를 비롯한 ‘이름 없는 영웅’들을 다룬 배경이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일제 시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분단의 비극과 군사 독재의 반공주의 여파로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됐다. 해방 이후 정부 기금으로 간행된 책 '독립운동사'는 사회주의 운동을 다루지 않는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한국독립운동사자료'와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독립유공자를 선정할 때도 사회주의 운동가는 서훈에서 제외되거나 불이익을 받았다. 임 교수는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 조금씩 빗장이 풀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일제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길양(왼쪽), 암호를 지키기 위해 자해하다 정신이상자가 된 강달영의 사진. 푸른역사 제공

일제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길양(왼쪽), 암호를 지키기 위해 자해하다 정신이상자가 된 강달영의 사진. 푸른역사 제공


임 교수는 낯선 이름들의 사회주의자들을 대거 발굴했다. 가령 1928년 창창한 34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옥사한 박길양. 그는 일제 강점기에 대표적인 항일비밀결사 사건인 ‘101인 사건’의 멤버다. 옥중에서 독립운동 조직의 암호를 지키려고 머리를 책상에 찧는 등 자살 시도를 거듭하다 정신이상자가 된 강달영. 그는 조선공산당 제2대 책임비서였다. 비밀결사운동 중 사로잡힌 후 105일 단식 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 “나는 더 살 수 없으니 나의 뒷일을 동무들이 계속해 조선 독립을 완성하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영웅이 된 독립운동가’들의 휘광에 가려졌던 평범한 이들의 헌신에도 조명을 비췄다. 일본군 대장 저격을 시도한 ‘황포탄 의거’의 주역 김익상. 13년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그 기간 동안 비참한 삶을 살았던 아내와 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 철도부설 자금을 탈취하려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된 임국정. 어머니 임뵈뵈가 아들 임국정의 장례를 주관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임 교수는 “아버지 없이 자란 어린 자식,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운 아내들, 자식을 잃은 노부모의 애타는 고통을 후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오현주, 김달하, 김대우, 독고전, 김성근 등 변절자 이름도 책에 새겼다. 오현주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현재 돈으로 약 3억 원을 받고 70여 명의 애국부인회 회원을 팔아넘겼다. 이후 98살 천수를 누린 뒤 사망했다. 사회주의운동 제1세대 멤버였던 독고전은 젊은 여성 동지 김명시를 일본에 넘겼다. 역사가 반드시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임 교수의 책을 통해 최소한 변절자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한 임 교수는 모스크바의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 등을 비교ㆍ검토해 책을 썼다. 고문서에 잠들어 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이 임 교수의 손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책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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