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복 후임으로 임명... 6년 임기 마치고 퇴임
양심적 병역거부·동성 군인 성관계 '처벌 불가'
삼성전자 노동자의 다발성 경화증 산재 인정
"입법 안 해 불필요 소송 늘어, 상고제 개선해야"
'일본 전범기업 자산 매각'은 끝내 결론 안 내려
학자 출신의 김재형(57)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을 떠났다. 관심을 모았던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사건에 대해선 끝내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김 대법관은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작심한 듯 사법부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관은 "입법 또는 정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그러면서 '국회의 직무유기'를 언급했다.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국민들이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고, 이는 불필요한 소송으로 이어져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현행 상고심 제도를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대법원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전원합의체와 공개변론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상고심 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의장 김명수 대법관)는 현재 상고제도 개선책으로 상고심사제도 도입을 통한 심리사건 축소와 대법관 증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대법관을 정치적 이념에 따라 재단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계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둬 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선언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뒤를 이을 오석준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관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와 학자(서울대 교수)의 길을 거쳐 2016년 이인복 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는 6년 재임 기간 중 굵직한 판례를 여럿 남겼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심을 맡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입대를 하지 않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부대 밖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 군인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의 다발성 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제가 내린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김 대법관은 이날 퇴임사에서 "제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강제동원 피해 배상을 하지 않으려고 현금화 명령에 불복해 미쓰비시중공업이 제기한 재항고 사건에 대해선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재산 강제매각(현금화)에 대한 대법원 결정은 언제 나올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김 대법관은 결정을 못하고 떠나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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