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나요?

입력
2022.09.02 22:00
23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부. 어느 날, 아내에게 갑작스럽게 마비가 온다. 남편은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말조차 못 하게 된 상태에서 아내는 음식마저 거부한다. 스스로 배변을 해결할 수도, 몸을 씻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아내는 끔찍하게 괴로워한다. 당신이 남편이라면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당신이 아픈 아내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

이 상황은 2012년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무르'의 내용이다. 영화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당신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라는 주제를 던진다.

최근 '조력 존엄사 합법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 이상이 합법화를 찬성했으나, 종교단체를 비롯해 법안이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우려한 시민의 목소리도 크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은폐되고 금기시된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어둡고 극적인 외부의 사건이 된다. 우리는 죽음을 있는 한껏,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뒤로 미룰 것을 권장받는다. 좋은 죽음이란 병원에서 현대 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받은 후에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만약 내가 말기 암에 걸렸고,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면, 나의 가족들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말기 암에 걸린 것이 부모님이라면 어떨까? 자식들은 부모님이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를 받을 것을, 해볼 수 있는 치료가 모두 끝나면 임상실험에라도 참여할 것을 권장하지 않을까? 그것이 일반적 의미의 효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죽음을 신체적인 상태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주체적인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심장이 뛰지 않는 물리적인 상태만을 죽음의 기준으로 두었을 때, 우리는 물리적 신체를 유지시키는 데 끊임없이 골몰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명예를 박탈당했을 때, 사회에서 소외되었을 때 스스로의 죽음을 느낀다. 과거에 귀족들이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결투를 신청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결투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죽음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모독을 뜻하는 영어 단어 'mortification'의 어원에 죽음(mort)이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대한 여론조사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죽음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력 존엄사 합법화'라고 하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당신은 어떠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이 주제는 성큼 가까워 온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논란만 계속된다면, 이 결정 또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가게 될 수도 있다. 논의의 시간 동안 우리는 먼저 간병 체계 수립, 호스피스 확충에 힘써야 할 수도 있다. 이참에 생각해보자.

그래.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