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현장
미래 핵심 에너지원으로 떠오른 해상풍력
양질 바람·대규모 단지 조성 등 장점 많아
정부, 긴축 재정 기조 속에서도 예산 두 배로 늘려
전력 계통망 구축 부족 등은 풀어야 할 숙제
파도가 비교적 잔잔했던 지난달 24일,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서 배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방문했다. 아파트 40층 높이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가까이 갈수록 그 웅장함을 더했다. 이날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풍력발전기가 아주 느리게 돌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풍력 발전기 하면 떠오르는, 날개가 바람을 가를 때 나는 '웅~' 하는 소음도 배 엔진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함께 배에 탄 양인선 한국해상풍력 실증단지 센터장은 "육상에서와 달리 해상에서는 파도 등 배경 소음이 많아 소음이나 진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해상 풍력 발전의 이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서남해 실증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다. 2020년 1월 준공하고 올해로 3년째 전북 고창과 부안군 전기 사용량의 13.9%를 생산하고 있다. 4인 가구 기준 약 5만 가구의 1년치 전기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 내년 해상풍력발전 관련 예산 두 배 늘려
해상 풍력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래 에너지 중 하나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유럽에서는 해상풍력 발전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실제 발트해와 인접한 덴마크 등 8개국은 지난달 30일 2030년까지 해상 풍력 에너지 발전량을 20GW(기가와트)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발전량 대비 7배로, 약 2,00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국내에서도 해상 풍력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필요한 핵심 에너지원 중 하나다. 육상 풍력은 산꼭대기에 주로 설치하다 보니 대규모 단지 조성에 한계가 있고,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오는 등 장애물에 부딪혀 불규칙적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해상 풍력은 양질의 바람을 손상 없이 바로 쐴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박을 통해 기기를 옮기기 때문에 공사가 어렵지 않고, 설치 용량에도 딱히 제한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긴축 재정을 강조하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정부도 해상 풍력 발전만큼은 예외로 두고 내년 예산을 올해(74억 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린 165억 원으로 책정했다.
주민 수용성 문제, '상생'으로 답찾아
다만 해상 풍력도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가장 큰 어려움인 주민 수용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남해 실증단지를 만들 때도 어민들이 해상 시위는 물론, 청와대 집회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등 행정심판 청구까지 불사했다.
당시 한국해상풍력이 내놓은 카드는 '상생'이다. 원칙적으로 풍력발전 단지 안쪽으로는 배가 다닐 수 없지만, 어업 구역 축소에 따른 어민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안해 구조물 100m 이내를 제외한 단지 내에서 오가는 것을 허용했다. 실제 이날 발전기 사이사이로 둥둥 떠 있는 꽃게, 주꾸미 조업 부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공사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환경모니터링도 실시했다. 그 결과 준공 3년째를 맞은 현재 수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바다 아래 설치된 구조물 표면에 해조류와 굴 등이 서식하는 등 해상 생태계는 도리어 풍부해졌다.
국내 해상풍력 발전 가능성 시험대... 각종 기술개발 시도
서남해 실증단지는 국내 해상풍력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증단지에 설치된 20기 중 17기는 블레이드(날개 부분) 길이가 나머지 3기보다 34m 더 긴데, 이곳의 약한 풍속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것이다. 길어진 블레이드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소재도 기존 유리섬유 대신 탄소섬유를 썼고, 무게가 약 16% 가벼워졌다.
기초 구조물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에는 해수층을 거쳐, 퇴적층, 암반층까지 파고들어 가야 해 설치 기간이 40일 넘게 걸렸지만, 새롭게 도입한 석션 버켓형은 뻘에 심는 거라 육상에서 만들어 그대로 해상에 빠뜨리기만 하면 된다. 설치 기간이 이틀 정도로 단축될 뿐 아니라 공사 비용도 1기 기준 약 23%가 절감된다.
기존에 없던 해상 시설 관리 및 운영을 위한 절차서는 물론, 점검기준, 시스템, 선박 통항 감시 및 통제 시스템 등도 갖췄다.
국산화 서두르고, 출력 제한 문제 해결해야
하지만 해상 풍력의 대규모 상용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해외에서는 15MW급이 등장하는 등 해상 풍력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 기술 개발은 더디다. 실증 단지에 설치된 건 3MW(메가와트)급이고, 두산에너지빌리티가 전남 영광에서 국내 처음으로 8MW급을 실증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발전기를 한 번 설치하면 20년 동안 운영해야 해 유지 보수 시장을 고려할 때 국산화를 포기할 수 없다"며 "해외보다 늦은 건 사실이지만 꾸준히 실증하고 경험을 쌓으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출력 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 계통망 강화도 필요하다. 아무리 재생에너지를 많이 생산해봤자 송·배전망 등 전력 계통 내에서 감당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발전 사업 허가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충열 수협중앙회 해상풍력대응지원반장은 "해상 풍력 관련해 허가된 사업만 65개고, 이 중 61개가 어업활동보호구역에 들어가 있어 어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주민수용성 등을 감안해 보다 계획적으로 입지를 고르고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