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주택' 원조 일본, 작은집 선호 속설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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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주택' 원조 일본, 작은집 선호 속설은 사실일까?

입력
2022.09.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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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일본과 한국의 집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추구하는 공간 미학은 매우 다르다. 한국은 공간을 구분하는 스케일이 크고 기능적으로도 열린 구조를 선호하는 반면 일본은 공간의 역할을 세세하게 나누고 그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한일 간 선호하는 집 구조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본인은 작은 집을 좋아한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은 객실이 좁기로 악명이 높다. 침대가 놓여 있는 것만으로 꽉 찰 정도로 방이 비좁은 데다가, 침대도 사이즈가 아담해서 키가 큰 사람은 침상 밖으로 발이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는 세면대와 샤워부스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옷장이나 금고 등도 구비되어 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작은 공간에 필요한 것들이 효과적으로 배치된 상황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탄스럽다. 비즈니스 호텔뿐 아니라 일본의 주택도 한국에 비하면 면적이 작은 편이다. 일본에서는 ‘다다미(畳’, 짚으로 속을 채운 일본 전통식 바닥재)’가 몇 장 깔리는지를 가늠해 주택의 넓이를 묘사하곤 하는데, 부동산 중개 사이트를 보면 기껏해야 다다미 대여섯 장 깔리는 작은 집도 허다하게 매물로 나와 있다. 부엌, 화장실 등 기타 설비 공간을 더해도 20평방미터가 안 될 정도이니 사실 집 한 채보다는 방 한 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좁은 주거 공간이다. 비즈니스 호텔의 객실이 비좁아도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소형 주택이라도 주변은 깔끔한 경우가 많다. 맨션(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공동 주택)도 작은 평형의 모델이 더 많고, 평수가 작아도 쓰임새를 고려해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작은 공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전략이 돋보이니, 집이 작다고 반드시 주거 환경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른바 ‘협소주택’이라고 부르는 작은 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방 하나가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하는 좁은 땅에 몇 층을 쌓아 올린 작은 집이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어떻게 보면 일본이야말로 협소주택의 원조격이다.

작은 집이 많다 보니 “일본인은 작은 집을 좋아한다”는 속설도 있다. 오래전부터 “일본 문화는 축소지향적”이라는 이야기도 회자되어 온 만큼 비좁은 주거 환경이 일본의 문화적 특징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서양의 외신에 “일본인은 부유해도 토끼굴처럼 형편없는 집에서 산다”고 야유하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당시 세계 2위에 달했던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대도시 주민의 삶의 질이 높지 않으니, 문화적인 이유를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일본인이 특히 작은 집을 좋아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패전 이후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재기해 단기간에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제 성장의 혜택이 주로 대기업이나 산업계에 돌아갔다는 점이다. 정작 기업의 일꾼으로 봉사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투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 정부가 나서서 공동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지만, 대도시의 주택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호황이 계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은 치솟았다. 샐러리맨들은 평생 월급을 쏟아부어 대도시 주변부에 작고 허름한 공동 주택 한 채를 겨우 마련하는 데에 만족하는 처지가 되었다. 작은 집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작은 집 이외에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도쿄나 오사카 등 집값이 비싼 대도시에서도 부자들은 넓은 집에 산다. 또, 지방 도시나 시골에 있는 오래된 집들은 정원이 널찍하고 집이 꽤 크다. 작은 주거 공간이 일본의 문화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한일 간 선호하는 집의 구조가 다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쾌적한 거주 공간을 원하는 것은 공통일 터다. 하지만 선호하는 집의 구조에 있어서는 한일 간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집이 크든 작든 개방감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툭 트인 거실을 중심으로 부엌, 식당, 방 등이 빙 둘러싸 배치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런 배치가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일본인의 눈에는 독특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 아파트의 거실 공간이 전통 가옥의 마당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에서는 대문을 열자마자 널찍한 마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곳은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가족이 담화를 나누기도 하고, 곡식을 말리거나 김치를 담는 등 가족 노동이 벌어지기도 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거실의 역할도 그와 비슷하다. 그곳에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고, 가족이 함께 TV를 보고 담소한다. 또 그곳에서 빨래를 개거나 명절 준비를 위해 전을 부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는 마당이나 거실과 같은 다목적 공간이 집 한가운데에 있는 구조가 익숙하다. 하지만 오직 감상을 위해 정교하게 꾸며 놓은 일본 정원의 역할과 대비시켜 보면, 마당과 같은 다목적 공간의 존재야말로 한국 주거 문화의 남다른 특징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파트의 거실이 전통 가옥의 마당의 역할을 한다”는 일본인 연구자의 고찰은 통찰력이 있다. 비교문화론적인 관점이 두각을 나타낸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비슷하게 한국인에게도 일본의 집이 낯설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대도시에서 공동 주택(한국은 아파트, 일본은 맨션)이 인기가 많은 것은 한일 공통이다. 그런데 일본의 맨션은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우선 복도나 벽을 마주치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좁은 복도를 통과하면 비로소 넓은 주거 공간이나 거실이 나타난다. 현관을 열자마자 툭 트인 거실을 기대하는 한국인에게는 이런 공간 배치가 답답하고 비좁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소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입구를 연출하는 것은 일본식 주거 공간의 특징이다. 좁은 문이나 낮은 천장, 복도나 가림막 등으로 입구 공간은 시각적으로 제한하지만, 안쪽으로 이동하면 높은 천장과 너른 공간이 불현듯 나타나 해방감을 주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공간 배치가 자리잡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경위가 있다. 17세기 에도 시대에 집이나 건물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가 있었는데, 건물의 정면 입구의 폭이 넓을수록 세금이 올라갔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입구 쪽은 가능한 한 좁게, 그 뒤쪽은 집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게 배치하는 양식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토나 나라 등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 남아 있는 전통 가옥들은 하나같이 입구가 좁고 어두컴컴하다. 그런데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높은 천장에 밝고 널찍한 공간이 난데없이 나타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일 문화가 추구하는 공간 미학의 방향성은 전혀 다르다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추구하는 공간 미학은 매우 다르다. 한국은 공간을 설계할 때에 자연스럽고 시원한 개방감을 연출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공간을 구분하는 스케일이 크고 기능적으로도 열린 구조를 선호한다. 반면, 일본의 공간은 아기자기한 변화와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 초점을 두어, 공간의 역할을 세세하게 나누고 그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처음 만나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뒤에 숨어 있으니 경험이 다채롭다. 이렇게 추구하는 미학이 다르다 보니, 서로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경향도 있는 듯하다. 일본의 주택이나 건물의 절제되고 인위적인 공간 연출이 답답하다는 한국인의 박한 평가를 제법 들었다. 한일 문화의 공간 미학을 추구하는 방향성이 전혀 다르니 어쩌겠느냐마는, 개방성보다는 역동성을 중시하는 일본식 공간 미학을 이해하면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를 이해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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