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北 인권보고관, JSA 방문 갑작스레 취소
미리 공지한 일정...아무 설명 없어 의혹 증폭
북한 눈치 보기, 페루-북한 껄끄러운 관계 거론

박진(왼쪽) 외교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방한 중인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언론에 공지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을 돌연 취소했다. 앞서 4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대 기류를 무릅쓰고 JSA를 찾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대조적이다. 북한 인권을 담당하는 유엔 최고권위자가 북한지역을 코앞에서 지켜볼 기회를 걷어찬 셈이다.
통일부는 31일 오전 출입기자단 문자공지를 통해 “오늘 예정됐던 살몬 보고관의 판문점 방문은 유엔인권최고대표 서울사무소의 요청에 따라 취소됐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취소 통보가 왔으며 사유에 대해서 통일부에 일절 설명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은 일반인도 판문점을 견학하도록 공개된 날이어서 살몬 보고관을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예정된 일정이 우리 측과 아무런 사전조율 없이 갑자기 무산된 것이다.
살몬 보고관의 방한 일정을 관리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 서울사무소에 물었다. 관계자는 "임무 수행 중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이라면서 “일정 변경의 이유를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의욕적인 행보와 어울리지 않는 석연찮은 설명이다.
살몬 보고관은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해 지난 27일 처음 한국을 찾아 29일부터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방문 및 박진 외교부 장관ㆍ권영세 통일부 장관 면담은 물론 통일부 주최 한반도 국제평화포럼에도 참석해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패널로 토론할 예정이다. 2일에는 기자회견도 마련돼 있다. 판문점 JSA 방문도 일찌감치 주요 일정에 포함돼 관심을 끌었다.
당사자가 침묵하고, 우리 정부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의 판문점 방문 취소를 놓고 관측이 무성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펠로시 의장 방문 당시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고 강력 반발한 전례가 있다. 살몬 보고관이 북한의 가장 아픈 구석인 인권을 담당하는 만큼, 판문점 방문에 대해 북한은 당연히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살몬 보고관은 29일 납북자가족모임 등 대북단체들과의 면담에서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살몬 보고관은 페루 출신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페루와 북한의 껄끄러운 관계를 이번 방문 취소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는 페루 법무부와 국방부,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페루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JSA를 방문할 경우 자연히 북한을 자극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도 있다. 살몬 보고관이 JSA 방문의 상징성을 포기하면서 소화해야 할 긴급 일정, 즉 한국의 최고위급 인사를 만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살몬 보고관을 접견해 “인권, 민주주의, 법치 분야에서 쌓아 오신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기여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며 “북한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한다는 입장이며 살몬 보고관의 활동에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살몬 보고관은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여러분의 지원하에 우리가 함께 시너지를 구축하면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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