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협의체보다 대화 채널부터 가동해야
WTO제소 시 통상 3년 걸려... 현실적 대안 아냐
세부 가이드라인에 우리 입장 최대한 반영해야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빼기로 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대응 방안마다 시각이 갈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긴급 통상추진위원회를 열어 △전기차 보조금 제도 논의를 위한 미국과 양자 협의체 구성 △통상규범 분쟁해결 절차 검토 △독일, 일본 등과 공조 추진 △정부 합동대책반 가동 등 IRA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안 본부장이 다음 주 미국을 가기에 앞서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는데, 논의된 방안들이 당장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걱정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먼저 양자 협의체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 제도만을 따로 살펴보는 협의체 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전기차만으로 협의체를 만드는 건 범위가 너무 좁다"며 "아예 친환경 관련 미래 기술에 대한 협의체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그 속에서 전기차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은 오래 이어질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드는 것보다는 일차적으로 대화 채널을 뚫는 게 더 현실적"이라며 "대화 채널을 뚫은 뒤 협의체 구성이 가능할지를 엿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실효성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WTO에 제소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통상 2, 3년이 걸리는데, 지금은 WTO 항소 절차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이미 현대자동차 등이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한 상황에서 제소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는 "제소를 하면 미국이 어느 정도 압박을 느끼긴 할 테지만 WTO가 제대로 가동될 때에 비하면 그 정도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제소를 통해 문제를 풀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유무역협정(FTA) 분쟁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미 FTA 규정상 문제 제기를 위해선 한미 FTA나 WTO 절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국제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금은 힘이 빠진 WTO 대신 FTA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이 경우 미국이 칩4(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많은데, FTA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걸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며 정면 대응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독일·일본 등과 손잡는 것은 미국 압박에 쓸모가 있을 수 있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독일, 일본 등 자국에서 전기차를 만드는 나라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경화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수석연구원은 "법이 통과된 이상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 고치긴 어려워 보인다"며 "여러 측면에서 대응 방안을 찾되 당장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핵심 광물이나 부품 비율 관련 가이드라인에 우리 입장이 하나라도 더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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