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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피해자 국가 배상 길 열려… 대법 "수사·기소·재판 모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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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피해자 국가 배상 길 열려… 대법 "수사·기소·재판 모두 문제"

입력
2022.08.30 19:35
수정
2022.08.30 19:37
1면
0 0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령은 불법행위"
"수사기관과 법관, 객관적 주의의무 소홀"
7년 전 대법 판단 뒤집어… 줄소송 예상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 발령이 고도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7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최주연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 발령이 고도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7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최주연 기자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긴급조치 9호'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에 대해선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를 7년 만에 변경한 것으로, 향후 피해자들의 줄소송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전 사무총장 유종성씨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씨 등은 1978년 10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광화문 학생 시위를 주도하고, 유인물을 작성·배포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따라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를 발령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영장 없이 체포·구금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긴급조치 9호 발령부터 집행까지 '전체로서' 국민 손해 발생"


대법원은 이날 긴급조치 9호를 명백한 위헌·무효인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긴급조치 발령부터 수사 및 기소, 재판 등 일련의 과정 전체를 국민의 기본권 침해 행위로 판단했다. "긴급조치 9호가 국민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지 세심하게 따지지 않은 다수 국가 공무원들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으로,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는 불법행위' 요건을 충족한다는 게 대법관들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경찰이나 검사, 법관 등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따질 필요 없이 전체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이 당연히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2015년 대법원 "긴급조치 9호는 위법이지만, 발령은 고도의 정치행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령을 보도한 1975년 5월 13일자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령을 보도한 1975년 5월 13일자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번 판결로 2015년 대법원 판결 이후 막혔던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길이 열리게 됐다. 당시 대법원은 2013년 긴급조치 9호가 위헌 무효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유지하면서도, 긴급조치권 발령이란 정치행위로 인한 개별적 기본권 침해에 대해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은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국가로부터 억울한 옥살이 등에 따른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

2016년 광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등에선 대법원 판례와 달리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선, 법원행정처가 판결을 내린 법관들의 징계를 검토한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피해자들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구제의 길 막혀…특례법 제정해야"

30일 민변 긴급조치변호단과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이 주최하는 긴급조치 9호 관련 대법원 전합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가운데 유영표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관련 손해배상소송을 원심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주연 기자

30일 민변 긴급조치변호단과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이 주최하는 긴급조치 9호 관련 대법원 전합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가운데 유영표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관련 손해배상소송을 원심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주연 기자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향후 긴급조치 9호는 물론 다른 긴급조치 피해자의 국가배상 소송에 명확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에 따르면 긴급조치 9호와 관련해 국가 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들 중 174명(대법원 24건, 하급심 9건)이 아직 재판을 받고 있다.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된 사람만 800명 정도에 달하는 데다 긴급조치 1호와 4호 관련 사건까지 감안한다면, 향후 더 많은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이 이날 '선고 시점부터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소멸시효 적용 기준을 밝히면서,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데 걸림돌도 없어졌다.

다만 긴급조치 9호와 관련해 국가 배상을 청구했다가 패소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193명)까지 구제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양민호 긴급조치 9호 및 1호 재심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특별법 입법을 통해 패소가 확정된 피해자들도 구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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