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성 담긴 ‘피크닉 세트’... 200년 마을 숲에서 마음 정화 소풍

입력
2022.08.30 17:00
21면
0 0

남원 행정리 서어나무숲 ‘숲멍 피크닉’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숲멍 피크닉'. 피크닉 세트를 받아 그늘 아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편히 쉬면 된다.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숲멍 피크닉'. 피크닉 세트를 받아 그늘 아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편히 쉬면 된다.

전라북도 남원 주천면에서 정령치로 올라가다가 중턱쯤, 고기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운봉읍으로 이어진다. 이만큼 올라왔으면 그만큼 내려가야 정상인데, 도로는 평지를 가로지른다. ‘운봉’ 땅에 ‘고원’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유다. 해발 450~500m 드넓은 고원 평야를 달리다 보면 도로 왼편에 봉긋하게 솟은 숲이 나타난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들판 한가운데 키 큰 나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200여 년 전에 심고 가꾼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이다.

허허벌판에 터를 잡은 마을의 허한 기를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으로, 1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서어나무가 타원형을 이루며 바람막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어나무는 줄기가 매끈하면서도 튼튼해 일명 ‘근육나무’라고도 불린다. 그늘이 드리워진 숲은 한여름에도 냉방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해 더위를 식히려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이따금씩 햇살이 부서지고, 새소리 매미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퍼진다.

남원 운봉읍 고원 평야에 조성된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남원 운봉읍 고원 평야에 조성된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숲멍 피크닉'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간식과 사진찍기 소품.

'숲멍 피크닉'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간식과 사진찍기 소품.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진 행정리 서어나무숲.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진 행정리 서어나무숲.


규모는 작지만 마을의 자부심이자 자랑거리인 이 숲에 또 하나의 경사가 생겼다. 올해 생태녹색관광 육성사업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라북도,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11월까지 매주 목·금·토요일 서어나무숲에서 ‘숲멍 피크닉’ 행사가 무료로 진행된다.

마을 해설사로부터 숲의 유래와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참가자들은 돗자리와 함께 간식거리가 들어 있는 피크닉 상자를 제공받는다. 각자 맘에 드는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좋을 대로 휴식을 취한다. 자리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다 낮잠을 즐겨도 좋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기에도 그만이다.

지난 26일 피크닉 상자에는 운봉읍의 제과점에서 공급하는 탄산음료와 머핀이 담겨 있었다. 이왕이면 수입 음료 대신 지역 특산물이라 자랑하는 오미자 음료나 주민의 손맛으로 빚은 식혜였으면 더 좋았겠다. 그러나 무료로 제공하는 간식이니 불평할 상황은 아니다. 피크닉 상자에는 필기도구도 들어 있어 여행의 서정을 글로 남길 수 있다.

서어나무숲 아래에 누우면 나풀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살이 파고든다.

서어나무숲 아래에 누우면 나풀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살이 파고든다.


'숲멍 피크닉'에서 제공하는 음향기기를 이용하면 자연의 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숲멍 피크닉'에서 제공하는 음향기기를 이용하면 자연의 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숲의 소리에 더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음향기기를 대여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처럼 마이크와 연결된 헤드세트를 쓰면 나풀거리는 나뭇잎 소리,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까지 감미롭게 들린다. 숲멍 피크닉은 카카오톡 ‘문화예술조합섬진강’ 또는 전화(063-636-1855)로 예약할 수 있다.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 진행되며, 참가 인원은 각 15명 안팎이다.

운봉읍까지 갔으면 서어나무숲에서 약 5㎞ 떨어진 ‘덕치리 초가’도 들러볼 만하다. 덕치리 회덕마을에 남아 있는 이 집은 엄밀히 말하면 억새로 지붕을 얹은 ‘샛집’이다. 1895년 박창규씨가 처음 지었고, 한국전쟁 때 불탄 후 1951년 다시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과 창고로 구성되는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안채 툇마루에 앉으면 잡풀이 숭숭 자라난 헛간 지붕과 정갈하게 꾸민 화단 너머로 지리산 바래봉 능선이 그림처럼 보인다.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시골 외갓집’ 풍경 그대로다.

남원 주천면 '덕치리 초가'의 둥그런 지붕 너머로 지리산 바래봉 능선이 이어진다.

남원 주천면 '덕치리 초가'의 둥그런 지붕 너머로 지리산 바래봉 능선이 이어진다.


덕치리 초가 안채 부엌 문에 영화 촬영 내력이 적혀 있다.

덕치리 초가 안채 부엌 문에 영화 촬영 내력이 적혀 있다.


덕치리 초가 마당에 참깨를 말리고 있는 풍경.

덕치리 초가 마당에 참깨를 말리고 있는 풍경.

안채 대문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글귀가 눈에 띈다. ‘서기 1991년 1월달 영화 촬영 허고, 정지(부엌)문 선사’ ‘1996년 8월 24일 선전영화 촬영하고 금 30만원 받고.’ 세트 촬영으로는 흉내내기 어려운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라는 증거다. 예고 없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객이 성가실 법도 한데, 커피 한 잔을 내놓는 안주인의 마음 씀씀이도 따뜻하다.

남원 운봉읍 '지리산 허브밸리'의 조형물.

남원 운봉읍 '지리산 허브밸리'의 조형물.

서어나무숲에서 가까운 ‘지리산 허브밸리’도 진한 가을꽃 향기 속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바래봉 자락 넓은 부지에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피우는 정원과 조각공원, 온실 등을 갖췄다. 아이를 동반한 여행객이라면 코끼리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봐도 괜찮다.

남원=글·사진 최흥수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