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 방지 백신곡' 만든 지코
신작 '그로운애스 키드' 발매
"진실한 소통 욕구 커져"
Z세대 래퍼가 뒤 돌아본 이유" 앞으로 가면 기다려야 하니까"
블락비 리더, 기획사 수장, 프로듀서... "보스 아닌 리더가 되려 한다"
"무해한 삶 살고 싶다"는 래퍼
코로나 대유행 때 '아무노래'(2020)는 '우울 방지 백신'이었다. 래퍼 지코(30·우지호)가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라고 부르는 노래 덕분에 온라인엔 신나는 놀이판이 펼쳐졌다. '아무노래'의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리꾼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며 아무렇게나 춤을 추는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 따라하기 열풍으로 '아무노래'는 팬데믹 2년여 동안 가장 사랑받은 노래(서클차트 집계·2020~2022년 상반기 기준 최다 재생)가 됐다. 제멋에 취해 '스왜그(Swag)'만 가득한 노래를 쏟아내는 힙합 음악 시장에서 지코가 쏘아 올린 반전이다.
'아무노래'로 세상을 들썩인 지코는 진중했다. 심리학책 '미움받을 용기'를 소재로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을 풀어냈다.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 깨우친 처세라고 했다. 그런 그의 오른팔엔 성경 구절이 영어로 새겨져 있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장 7절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소재 KOZ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 지코를 만났다. 2020년 7월 입대해 올해 4월 소집해제. 병역을 마친 후 지코는 '다 자란 아이'란 뜻의 앨범 '그로운애스 키드'를 이달 냈다. 그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을까. "무해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래퍼와의 인터뷰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새 앨범 타이틀곡 '괴짜'에선 '지구 종말까지 D-1'이 주제다. 다른 노래 '서울 드리프트'에선 '압축 파일처럼 집에 묶여서'라고 랩을 한다. 팬데믹으로 어떻게 삶이 흔들린 건가.
"어울림과 소통이 이렇게 부자연스러웠던 시기가 없었던 것 같다. 정보의 공유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뤄지는데 감성을 공유할 땐 버벅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버퍼링 걸린 채 '만나서 얘기하자'란 말의 힘을 확인했다. 카톡을 할 때 'ㅋㅋ'를 습관처럼 보내지 않나. 근데 정작 실제 웃진 않고. 팬데믹 때 만나지 못하다 보니 진실한 소통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
-'괴짜'에 흥이 넘친다. '아무노래' 전 낸 '싱킹' 시리즈 등 전작들과 비교하면 딴판이다.
"'싱킹'까지만 해도 나를 꺼내놓는 데 치중했다. 작업을 한 뒤 '내 음악에도 주름이 생기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고. 그러다 '아무노래' 때부터 사회적 정서나 흐름에 주목했다. 가치관이 변했다. 데뷔했을 땐 생존이 제일 중요했다. 그 이후엔 인정받으려 증명 투쟁을 했고. 그러다 음악적 기술('솔메이트'·2008)에 집착했는데 이젠 소통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따라 부르지 않고 즐길 수 없는 노래에 굉장한 회의감이 든다. 그래서 남을 위한 음악이 화두다."
-'녹터널 애니멀스'에 록 블루스를 녹였다. '날'(2015)엔 '못다 핀 꽃 송아'라고 가사를 썼다. 김수철 생각이 난다. 옛 음악을 즐겨 듣나.
""2~3년 전에 정미조 선배님의 '개여울'(1972)을 비롯해 이은하 선배님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1976), 조용필 선배님의 '고추잠자리'(1981) 등을 자주 들었다. 지금 들어도 너무 '힙'하다. 창작을 하면서 새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혈안이 됐다. 그게 날 가두더라. 그래서 '뒤돌아서 반대로 가보면 어떨까. 앞으로 가면 기다려야 하니까'란 생각을 했다. 요즘엔 2000년대 초반 노래에 꽂혀 있다. 그때만 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았다."
-'오키도키'(2015)를 화장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고 들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자극받아 쓴 노래가 또 있나.
"그때는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쏟아질 때였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불면증이 심해 괴로워하다가 쓴 곡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곡을 만들 때 내 상황을 기록할 수 있어서 좋다. 남길 수 있으니까."
"부스터샷도 못 막아 내 목표는 인재양성". 지코의 새 앨범 수록곡 '트래쉬 토크'의 가사다. 중의적인 말로 언어 유희를 주는 것 즉 펀치라인은 작사가 지코의 특기다.그는 '오키도키'에서 "색안경 끼고 봤자 입체감만 살아"라고 랩을 한다. 극장에서 3D 영화를 색안경을 쓰고 보지만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걸 비틀어 자신을 향한 힙합 음악 시장 내 일부 폄하적 목소리에 맞선 것이다. 이런 그의 글밭은 책. 지코는 백가희 작가의 수필 '당신이 빛이라면'에 추천사를 써 '문학돌'의 흔적을 남겼다. 어떻게 가사를 쓰냐고 물었더니 지코는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고 랩을 읊었다. 테이블에 놓인 카페라테가 재료가 됐다. "나 때는 말이야, 라테는 카페인~".
-글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휴대폰으로 찍어 둔다. 최근에 찍어 둔 문구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었고."
-좋아하는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다. '인간실격'을 읽고 '사양'까지 찾아 읽었다. 염세적이고 폐쇄적인데 그 안에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생명력이 있는) 표현들이 놀라웠다. 국내에선 백가희 작가님 글을 좋아해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샀다."
아이돌그룹 블락비의 리더였던 지코는 지금 KOZ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다. 래퍼는 김세정의 발라드곡 '꽃길'(2016) 프로듀서를 맡아 노래를 음원차트 정상에 올려놨다. 그런 그는 아이돌그룹 기획에 한창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즐겨 봤다는 지코는 "먼 곳을 가리키면서 달려가라고 명령하는 주체가 아니고 먼저 우리들이 가야 할 곳에 앞장서 간 다음 오라고 손짓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블락비로 데뷔했을 때 그는 소속사 내부 마찰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흙수저 아이돌'이 산전수전을 겪으며 얻은 교훈이었다.
-어떤 리더인가.
"내가 한 일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자기 기만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객관화가 중요하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둬 더 다양한 작업물을 낼 수 있으니까. 분수에 안 맞게 넘쳐 흘렀을 때 그걸 주어 담으려다가 실수한 적도 많다. 보스가 아닌 리더가 되려 한다."
-래퍼인데 '유교 소년' 같다.
"서른밖에 안 됐지만 '일어날 일은 언젠간 일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야망 캐릭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아티스트 그리고 사람으로서 무해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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