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보면 김연아 선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자신감 있는 경기를 한다. 본받고 싶어서 영상을 자주 보고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 하려고 한다.”
골프에도 ‘연아 키즈’가 있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32)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연기를 밥 먹듯이 보고 성장한 데뷔 2년차 홍지원(22)이 우상처럼 압박감이 큰 상황을 이겨내고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차지했다.
홍지원은 28일 강원 춘천시 제이드 팰리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이븐파 72타를 쳐 최종 합계 1오버파 289타로 정상에 올랐다. 5오버파 293타를 기록한 2위 박민지(24)와는 4타 차다. 오버파 우승자가 나온 건 2015년 한국여자오픈(베어즈베스트 청라)에서 1오버파로 우승한 박성현 이후 7년 만이다.
홍지원은 '지옥 코스'를 약속의 땅으로 만들었다. 제이드 팰리스 골프클럽은 올해 대회를 앞두고 페어웨이의 폭을 좁히고 러프의 길이를 늘려 정확한 샷이 아니면 그린 공략이 어렵도록 코스를 조성했다. 실제 일부 긴 러프 구간은 100㎜가 넘어 공이 잔디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결과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지원은 나흘 내내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1라운드에 1언더파를 기록했고, 2라운드도 이븐파로 타수를 잃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는 2타를 잃었지만 공동 선두에 자리했고, 마지막 날도 이븐파로 버텼다. 특히 4라운드까지 더블보기 이상 스코어를 한 번도 적어내지 않은 선수는 홍지원과 홍진영2 둘 뿐이었다.
데뷔 시즌인 지난해 신인상 포인트 4위에 올랐던 홍지원은 샷이 정확한 편이지만 퍼트가 좋지 않았다. 올해도 퍼팅이 부진해 19개 대회에서 10차례나 컷 탈락했다. 페어웨이 안착률(20위·76.1%)과 그린 적중률(7위·78.2%)에 비해 저조한 평균 퍼팅(120위·32.02개)이 문제였다.
상금랭킹은 82위(5,731만원)에 그쳐 60위까지 주어지는 내년 시드권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번 우승상금으로 2억5,200만원을 받아 단숨에 20위(3억931만원)까지 올라섰다. 아울러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2025년까지 3년 시드권을 획득했다.
마침내 우상 김연아처럼 우승 맛을 본 홍지원은 “우승은 상상만 했는데 메이저 대회에서 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며 “영광이고, 믿기지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 순간을 꿈꾸면서 골프를 쳤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이제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를 따라 피겨를 시작했다가 체중이 늘어 그만뒀다는 홍지원은 “김연아 선수는 멘털 쪽으로 대단한 분이다. 연락하고 싶은데 워낙 유명하셔서 연락할 방법이 없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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