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현실 안 맞는 법 한 줄, 기업 생사 갈라"
경제법 제재 벌금·징역형→과태료 낮춰
노조법 등 화약고 수두룩, 국회 진통 불가피
정부가 경제 관련 법을 위반한 기업인에 대한 징역·벌금형을 과징금으로 낮추는 등 경제사범 처벌을 대폭 완화한다. 엄격한 경제 형벌 기준이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도 예고하고 있는데, 여야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과자 만드는 경제 형벌, 폐지·과태료
정부는 26일 대구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32건의 경제 형벌 규정 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징역·벌금형을 부과해 전과자를 만드는 경제 형벌을 △폐지 △과태료 전환 △행정 제재 선 집행 후 형벌 △형량 조정 등 네 가지 방식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우선 정부는 행정 제재로 충분히 제재가 가능한 형벌 2개를 없앤다. 식품위생법상 영업자의 과도한 호객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처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같은 법에 관련 행위 영업자를 등록 취소·영업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있는 점을 감안했다.
행정상 경미한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는 11개 규정은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한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1억 원 이하 벌금에서 과태료(동일인 1억 원 이하·임직원 등 1,000만 원 이하) 부과로 바꾼다. 액수는 같더라도 기업인 입장에선 '빨간 줄'을 피할 수 있다.
5개 형벌은 징역·벌금형으로 직행하는 대신 행정 제재를 먼저 가한다. 대표적으로 납품업자에 배타적 거래를 강제하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를 방해한 행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춘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과징금 및 시정명령으로 완화하고 이 행정 제재를 따르지 않을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식이다.
아울러 환경범죄단속법 등 14개 형벌의 형량을 완화하거나 차등화한다. 현재 환경범죄단속법은 오염물질 배출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부과한다. 앞으로는 사망 건에 대한 형벌 기준은 그대로 두고 상해를 입힌 경우에 한해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조정한다.
"벌금·과징금 낮은 형벌 강화는 외면"
정부는 민간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 형벌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형벌이 각종 규제처럼 기업 활동을 발목 잡는 '모래주머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현실에 맞지 않는 법령 한 줄, 규제 하나가 기업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며 경제 형벌의 원점 재검토를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인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등 재계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현 정부는 재계 말만 듣는 것 같다"며 "벌금이나 과징금 수준이 낮아 문제가 되는 형벌, 행정 제재 강화는 외면하고 완화 쪽으로만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 사항인 경제 형벌 개선이 국회를 무사통과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번 1차 과제의 국회 처리를 가를 열쇠는 경제 형벌 개선사안 중 핵심인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다. 정부는 중대사고 발생 시 사업주 처벌 조항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은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인다면 이번 경제 형벌 개정 입법도 '올스톱'될 수 있다.
정부가 연내 발표를 목표로 취합 중인 2차 과제도 화약고다. 경제계는 △노동조합법상 부당 노동행위 위반 △상법상 배임죄 △공정거래법상 담합·불공정거래의 형벌 규정 개선 등 노사·여야 입장차가 큰 사안을 2차 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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