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의사' 밝혀야 성관계 동의 간주
앞으로 스페인에서 피해자의 명확한 동의를 얻지 못한 성관계는 모두 ‘성범죄’로 간주될 전망이다. 가해 과정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돼야 성폭행으로 인정됐던 기존 법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스페인 의회가 25일 ‘비동의 강간죄’를 제정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의회에 상정된 법안에는 성범죄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 측이 ‘분명한 동의 의사를 표현한 경우’에만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의 ‘묵시적’ ‘수동적’ 동의는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는 의미다. 이른바 ‘예스만이 예스다(Only yes means yes)’ 법안이다. 가해자가 폭력을 가했는지, 이에 저항했는지 여부를 피해자 본인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법안은 또 ‘성학대’와 ‘성폭행’의 구분을 삭제했다. 성폭행 가해자의 폭력ㆍ위협 행위 탓에 성관계에 이르게 됐다는 점을 피해자가 입증하지 않아도 되도록 개선했다. 거리 성희롱 행위나 동의 없는 음란 이미지ㆍ동영상 전송 행위 등에도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2016년 스페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늑대무리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스페인 소몰이 축제 기간 20대 남성 5명이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한 10대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가해자들은 ‘늑대무리’라고 이름 붙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 방에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1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성폭행보다 형량이 낮은 ‘성학대’ 혐의만 적용됐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 ‘묵시적’이었고 ‘수동적’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피해자가 눈을 감고 있는 등 적극 행동하지 않았고, 당시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남성들이 위협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고 봤다. 가해자가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을 가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성폭행으로 판결 내릴 수 있도록 한 기존 법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후 가해 남성 전원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자 ‘법이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스페인 전역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도 잇따랐다. 당시 시위는 세계적인 ‘미투 운동’ 확산과 맞물리며 주목 받았다. 결국 스페인 대법원은 2019년 최종심에서 기존 판결을 뒤집고 가해자들의 성범죄 혐의를 인정했다. 가해자들의 형량은 징역 9년에서 15년으로 늘었다.
최근 스페인에서 성폭행 범죄가 급증하면서 비동의 강간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확산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스페인 강간 범죄 건수는 전년대비 3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상정되는 법안은 의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어 여유 있게 통과될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보수 성향의 야권에서는 법안이 불필요하고 오만하다면서 반대 의사를 내고 있다.
법안이 제정될 경우 스페인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유럽연합(EU)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현재 유럽 내에서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한 국가는 독일과 벨기에, 덴마크 등 12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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