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가음면 현리 2리 박연구 이장
난제 해결, 마을 화합, 선진화에 앞장
경북 의성군 가음면 현리 2리 박연구(60) 이장은 '연구대상'이다. 이장이 권력 있는 직책도, 수입이 큰 자리도 아니지만 그는 동네에서 나름 권위도 있고, 종종 사비도 왕창 쓰면서 일에 열심이다. 권력도 없는 박 이장이 권위를 그저 얻은 것은 아니다.
현리 2리에는 지난 40년간 풀지 못한 난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저수지, 수로, 양수기 등으로 농번기에 물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지만 1970~90년대만 해도 농토 물대기가 그해 농사의 성패를 가름할 정도였다. 가뭄이 심한 해는 더욱 그랬다.
40년 전 일이다. 인근에 과수원을 둔 주민 A, B씨가 물 문제와 관련된 농로로 크게 다투었다. A씨의 과수원은 B씨의 과수원 뒤에 있었다. A씨는 자신의 과수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B씨 옆 농로를 지나가야 했다. 이 농로는 1.5톤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데다 B씨의 사유지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평소 불편한 관계인 두 사람은 도로 포장 문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A씨는 물 대기를 할 때 이 비포장 농로를 이용하기 불편해 B씨에게 포장을 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B씨는 굳이 포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B씨 과수원 옆 농로는 물론이고 뒤로 이어지는 길 역시 최근까지 포장되지 않고 있었다. 이로 인해 A, B 두 사람은 사이는 회복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주변 주민들 역시 은근히 반목하는 양상을 보였다.
수십 년이 지나고도 이 같은 갈등은 계속될 조짐을 보였다. 그때 박 이장이 나섰다. 박 이장은 "40년이나 지난 옛일로 이러면 마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음 세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화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우선 포장부터 하도록 합시다"하고 설득했다.
박 이장의 중재로 A, B 두 사람의 40년 묵은 감정은 쉽게 풀렸고 농로는 포장됐다. 그보다 더한 수확은 두 어른이 40년간 막혔던 말문이 터고 있는 것이다.
박 이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현리 2리는 물론이고 주변 주민들을 위해 사비까지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가음면 자두, 복숭아 과수원을 가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청년 귀농인과 어르신들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까지 비슷한 종류의 선글라스를 끼고 일을 하고 있다. 이는 박 이장이 예전 대구에서 선글라스 도소매업을 하고 남은 제품들을 기부, 가음면이 얼마 전부터 면사무소에 무료 안경점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 지금은 주변은 물론 이웃 마을 주민들까지 선글라스와 안경을 얻기 위해 가음면사무소를 방문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선글라스 700여 개가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이 선글라스와 안경 기부는 재고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지금도 가음면 현리 1~3리는 물론 인근 춘산면, 금성면의 주민들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박 이장이 기부한 선글라스와 안경은 대략 1,500여 개다. 박 이장이 무급 봉사직을 수행하면서까지 남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통 큰 기부에 나선 것이다.
가음면 사무소를 찾은 가음면 현리 1리 이상기(59) 이장은 "아마도 현리 1리 75가구, 현리 2리 55가구는 모두 박 이장이 기부한 선글라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자두, 복숭아 등을 접과 할 때 하늘을 보며 일을 하는데, 그때 사용하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이상기 현리 1리 이장은 "현리 2리 박 이장은 이장이 되기 전인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지역 독거노인들을 위해 매년 300포기의 김장김치를 제공했다"며 "언젠가는 한번 박 이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식사대접이라도 제대로 한번 해야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가음면에 가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신기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쓰레기 분리 수거대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이야 어디나 있겠지만 이곳은 조금 색다르다. 우선 색채와 디자인이 세련되고 규모면에서 시원할 정도로 크다.
대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볼 수 있는 '유리병류' '캔', '고철' '헌옷' '플라스틱' '비닐'의 구분이 아닌 '유리병류' '캔', '고철류' '헌옷' '폐지' '폐지' '폐지'로 구분했으며 대형 사이즈인 것이 특징이다. 거의 매일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대도시와 달리 시골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감안, 외주 업체와 협의해 분리 수거대를 대형화한 것이다.
흔히들 보수의 심장이 대구라고들 하지만 의성은 대구 이상으로 보수색이 짙은 지역이다. 의성은 예천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지역이다. 또한 의성인들은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며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 반면 따듯하고 정이 많고 애향심이 남다른 점이 지역의 특징이기도 하다.
박 이장은 이 같은 의성인들의 장점은 키우고 미흡한 점은 개선시키며 마을 분위기를 쇄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향에서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구에서 유학을 포함 24년간 도시 생활을 했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40세에 결혼하고 이듬해인 2005년 고향에 귀촌했다.
귀촌 후 2020년 이장이 되기 전까지도 그는 가음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가음면 체육회 국장, 지역 보상협의체 위원장, 주민 자치 위원회 간사, 지역 소방대 총무를 역임하며 지역 일거리를 찾아 해결했다. 이장이 되고부터는 "언제 자고 언제 쉬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역 일에 헌신하고 있다.
박 이장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욕 얻어먹으려고 이장합니다"라고. 이장 일이 다수를 위한 것이다 보니 가끔은 일부 소수에게는 못마땅하게 비칠 수도 있는 법. 그럼에도 박 이장은 '욕먹을 각오'로 일에 덤벼들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박 이장의 소소한 업적도 눈길을 끌고 있다. 마을 곳곳에 수많은 꽃을 심더니, 국경일이면 주변 도로에 태극기를 직접 내걸고 있다. 동네 구석구석에 폐자재와 사용하지 않고 버려져 있던 폐농기구들도 정리했다. 그 결과 1.5톤 트럭 3대분 쓰레기가 나왔다. 마을 노인정 주변은 3년 전까진 앉아 쉴 수도 없었다. 쓰레기와 그 위에 낙엽들이 쌓여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런 곳이 마을에 5곳 정도 있었다. 현재 4곳은 모두 치워져 주민들이 여름이면 정자 밑에서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낮잠도 잠시 청하곤 한다.
아직도 마을에는 폐자재와 개인 물품이 어지러이 늘려있는 장소가 한 군데 더 있다. 위치상으론 마을의 중심지이고, 상징인 350년 된 회나무 주변이라 박 이장은 임기 중 이곳을 꼭 정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회나무는 박 이장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곳이어서 일대 청소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1970년대만 해도 마을 어른들이 만든 그네를 탔던 즐거움, 이웃 사람들과 함께 전을 부쳐 먹던 기억, 어르신들이 여름 무더위를 피해 나무 아래에서 막걸리를 드시던 광경 등이 생각난다"며 "하루 빨리 회나무 아래 정자에서 주민들이 쉴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주민들은 연구대상 박 이장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