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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일자리도, 친구도 없어요"... 복합 위기 놓인 '자립준비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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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일자리도, 친구도 없어요"... 복합 위기 놓인 '자립준비청년'들

입력
2022.08.26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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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사기·병원비 등으로 정착금 금방 바닥나
충분한 교육받지 못해 양질의 일자리도 부족
"마음의 안정부터 얻게 할 심리적 지원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지난해 12월 새벽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김모(22)씨. 크게 다치진 않아 응급실에서 간단한 치료만 받았다. 하지만 20만 원 넘게 청구된 병원비를 낼 능력이 안 됐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인 그에겐 예상치 못한 병원비를 내줄 가족도, 돈을 빌릴 친구도 없었다. 결국 김씨는 이전에 거주하던 아동양육시설에 연락한 뒤에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18일 광주광역시에서 보육원 출신 새내기 대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엿새 뒤 같은 지역에서 또 다른 보육원 출신 10대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립준비청년의 비극은 처음이 아니다. 약관의 나이에 세상에 내던져진 이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정부도 보호 기간을 늘리고 경제적 지원 확대도 약속했지만, 자립준비청년들은 여전히 외롭고 힘들다. 빈곤과 일자리 부족, 불안감이 결합돼 ‘복합 위기’에 놓인 ‘홀로서기’ 청년들을 보듬을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립준비청년 비극 들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은 지난해 기준 2,102명이다. 시설 유형별로 보면, 가정위탁이 1,219명(58.0%)으로 가장 많고, 양육시설 726명(34.5%), 공동생활가정 157명(7.5%)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만 18세까지던 보호 기간을 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연장했다. 아울러 자립지원전담기관을 전국으로 확대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상담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명칭도 보호종료아동 대신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꿨다. 성인이 됐지만 아직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책과 제도가 개선된 건 맞다. 그럼에도 고통을 호소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립준비청년 출신으로 이들을 돕는 사회적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김성민 대표는 “일주일에 1, 2건은 아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전화가 온다”며 “광주 사건이 이례적 일은 아니다”라고 씁쓸해했다.

끔찍한 빈곤의 굴레… 셋 중 하나는 '비정규직'

비극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중층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먼저 자립과 동시에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가난’이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은 자립수당과 자립정착금으로 나뉜다. 자립수당은 복지부가 보호종료 후 5년까지 월 35만 원씩 지급한다. 원래 30만 원이었지만 이달부터 5만 원 올랐다. 첫 홀로서기 때 한꺼번에 받는 자립정착금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500만~1,500만 원 사이인데, 복지부 권고금액은 800만 원이다.

그러나 자립준비청년들은 빈곤의 나락에 빠지기 쉽다. 판단력이 흐려 쉽게 사기를 당하거나 갑자기 병에 걸리는 등 급한 목돈이 필요해 정착금과 수당을 한 번에 날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는 자립준비청년 A(20)씨 역시 일을 하지 못하는 탓에 자립수당을 병원비로 다 써버렸다. 이들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한 번만 아파도 정착금은 금방 바닥이 나고, 곧바로 공과금 체납 등 생활고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자립준비청년 비정규직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자립준비청년 비정규직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일자리의 질도 나쁠 수밖에 없다. 전문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자립준비청년이 대부분이다보니 저임금ㆍ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자립준비청년 B(22)씨는 수당과 카페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갑자기 해고당했다. 실제 아동권리보장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립준비청년의 37.2%가 비정규직이었고, 33.7%는 월 15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맘 터놓을 어른 필요"... 심리적 지원 절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심리적 안정을 얻는 일이다. 어린 나이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좌절과 포기로 이어지기 일쑤다. 김 대표는 “시설에 있을 땐 선생님 보호 아래 있지만, 독립하면 세상에 혼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정부는 이들을 상담해주는 전담기관을 두고 있으나, 전국에 10곳밖에 없다. 그것도 인력이 부족해 한 명이 수십 명의 청년을 돌봐야 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질의 심리적ㆍ정서적 지원을 하기엔 모든 것이 미비하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사회적 가족 제도’처럼 일반 가정과의 연계를 강조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가정당 자립준비청년 한 명을 매칭하는 식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가족 울타리 안에서 상호 교류하며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보다 빨리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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