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CTV 간판 앵커, 갑작스러운 해고
"성별·연령 차별" 비판 잇따라
TV 뉴스 여성 앵커는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해묵은 통념이 다시 불려 나왔다. 캐나다 최대 민영 방송사인 CTV의 간판 여성 앵커가 흰머리로 카메라 앞에 섰다 갑자기 해고되면서다. 성별과 연령이란 이중 차별 논란에 불씨가 당겨졌다.
흰머리 때문에?...갑작스러운 해고에 '시끌'
논란의 주인공은 CTV를 대표하는 뉴스 프로그램 '내셔널 뉴스'의 수석 앵커 리사 라플람(58)이다. 그는 지난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2분여 분량 영상에서 CTV의 모회사인 벨 미디어로부터 해고당했다고 밝혔다. 라플람은 "내 선택이 아닌 방식으로 CTV를 떠나는 건 참담하지만, 그동안 뉴스를 할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CTV 측의 '계약 해지'는 라플람 스스로도 "기습당했고,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할 만큼 석연찮다. 무엇보다 라플람이 지난 6월 캐나다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에서 '베스트 뉴스 앵커'상을 받은 지 불과 2개월도 안 돼 벌어졌다. 35년간 CTV에서 일했던 라플람의 계약 기간은 2년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드메일은 보도했다.
여론이 주목한 건 그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다. 2년 전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용실에 갈 수 없었던 라플람은 방송 전 스프레이로 뿌리염색을 계속하다 '귀찮은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염색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은발로 뉴스를 진행하는 그의 모습에 캐나다 여성들은 크게 호응했다.
하지만 올해 1월 CTV의 새 수장이 된 마이클 멜링의 생각은 달랐다. 글로브앤드메일에 따르면 멜링은 "누가 흰머리를 해도 된다고 승인했느냐"면서 라플람의 머리카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보도를 두고서도 두 사람은 의견 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CTV "사업상 결정일 뿐" 해명에도 이중잣대 비판 거세
앵커 교체는 "사업상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CTV의 해명에도 후폭풍은 거세다. 그의 해고는 성차별과 연령 차별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사라 M'이라는 한 트위터 이용자는 "라플람은 나에게 나이 듦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며 "CTV의 결정은 엄청난 실수"라고 지적했다. 캐서린 맥케나 전 캐나다 환경부 장관은 "베테랑 저널리스트에 대한 끔찍하게 부당한 대우"라며 "부끄럽다"고 비난했다. 멜링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노화의 신호인 흰머리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흰머리는 전문성과 연륜을 상징하기도 한다. 남성에게 해당할 때 얘기다. 2011년 라플람이 '내셔널 뉴스'의 수석 앵커 자리를 꿰찼을 때 전임 앵커였던 로이드 로버트슨은 당시 77세 나이로 은퇴했다. 아만다 왓슨 사이먼프레이저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나이 든 남성의 권위와 편안함을 신뢰하면서 나이 든 여성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여성에 대한 명백한 이중잣대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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