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고소 사건
“맥락, 전체적 내용, 연관성 고려해야”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치적 맥락에서 상대 비판을 위해 ‘양두구육’ ‘철면피’ 등 모멸적 표현을 썼어도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5일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을 모욕한 혐의를 받는 송일준 전 광주MBC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송 전 사장은 2017년 7월 페이스북에 고 전 이사장을 겨냥해 “간첩조작질 공안출신 변호사. 매카시스트.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 역시 극우부패세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송 전 사장이 여러 거친 표현을 써 고 전 이사장을 모욕했다며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비속어는 아니지만 고 전 이사장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는 인신공격적 표현이고, 또 고소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해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2심은 ‘간첩조작질’은 무죄로 봤다. ‘고 전 이사장은 간첩 사건을 조작했던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나머지 표현은 유죄로 결론 내리고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송 전 사장이 쓴 모든 표현을 모욕으로 볼 수 없다면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파렴치, 철면피, 양두구육은 일상생활에서 ‘부끄러움을 모른다’ 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성이 있다’는 뜻으로, 언론이나 정치영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할 때 흔히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극우부패세력 역시 “범죄행위를 연상케 하는 용어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이념적 지형이 다른 상대방을 비판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비정치적 영역보다 정치적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다 더 강조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오랜 기간 공안검사로 일한 고 전 이사장은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1981년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다. 전두환 정권 초기 사회과학 독서모임 회원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고문ㆍ기소한 사건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에 임명됐다가 2018년 1월 해임됐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보수성향 시민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제18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가리켜 “부림사건 변호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올해 2월 파기환송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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