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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찾는 어린이에게, 너그러운 세상이기를

입력
2022.08.26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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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글 그림, '괴물 사냥꾼'

편집자주

그림책은 ‘마음 백신’입니다. ‘함께 본다, 그림책’은 여백 속 이야기를 통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을 보듬어 줄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어린이책 기획자이자 그림책 시민교육 활동가이기도 한 신수진 번역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괴물 사냥꾼ㆍ김민우 지음ㆍ풀빛 발행ㆍ40쪽ㆍ1만4,000원

괴물 사냥꾼ㆍ김민우 지음ㆍ풀빛 발행ㆍ40쪽ㆍ1만4,000원

어릴 때는 사방에 무서운 것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해가 지고 세상이 어두컴컴해질 무렵에는 익숙한 풍경들이 갑자기 낯선 괴물들로 돌변하거나 낮 동안에 숨어 있던 귀신들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누군가 뒤에서 “왁!” 소리만 내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던 그 시절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고, 하늘과 바람과 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인간이 세상 만물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배우고 믿게 되면서 막연한 공포는 사라졌지만, 그 대가로 내어준 것이 ‘순수함’과 ‘동심’만은 아닐 것이다. 백석의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1948)에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화자는 자기 마을에 온통 귀신들밖에 없어서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사실은 집과 마을 구석구석,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을 지켜주는 신비한 힘들을 자랑스러워하며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은근히 내비친다. 자연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접하고 경외하며 자연이 제공하는 보살핌을 누렸던 그 시절을 과연 풍요롭지 못한 ‘저개발’의 시기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김민우 작가의 그림책 ‘괴물 사냥꾼’의 주인공 형제는 동네 골목길 곳곳에서 다양한 괴물과 맞닥뜨린다. (혹시 괴물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면, 앞뒤 표지를 빛에 살짝 비추어가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찾아보시면 된다.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형제는 자기 보호와 괴물 사냥을 위한 갖가지 아이템을 장착하고 다닌다. 적외선 투시가 가능한 망원경, 크기가 무한으로 늘어나는 채집망, 물과 불과 바람의 속성을 지닌 특수 화살, 시속 1,224㎞로 발사되는 마법 총 등등. 설명만 들으면 무슨 판타지의 주인공인가 싶겠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거나 나무젓가락과 고무줄 같은 흔한 재료로 만든 장난감에 불과하다. 괴물들 또한 막강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아니라 마치 숨바꼭질하며 숨어 있는 친구들처럼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듯 장난스런 표정들을 하고 있다.

노천 카페에서 즐거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때론 '아이들이 노는 걸 어떻게 막아'라는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출판사 제공

노천 카페에서 즐거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때론 '아이들이 노는 걸 어떻게 막아'라는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출판사 제공

주인공 형제는 괴물로부터 몸을 숨기기도 하고, 달려드는 괴물들에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노천 카페의 입간판과 나무 의자들도 사실은 괴물이어서, 형제가 지나가면 입을 쩍 벌리고 떼를 지어 달려든다. 두 아이는 사나운 동물처럼 생긴 의자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주변 어른들은 의자와 테이블이 어질러지고 넘어지는 난리통(!)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책 밖의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비행기 안에서 어린아이가 운다고 부모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퍼붓는 어른이 있고, 노키즈존임을 당당히 내세우는 음식점과 카페, 심지어 전시장까지 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칼과 화살을 들고 뛰어다니며 집기를 넘어뜨려도 무심히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애들이 뛰는 걸 어떻게 막아?’ ‘잘 놀았으면 됐다’ 하고 넘어가 주는 것. 상상력이 사라진 어른들이 맡아야 하는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김미우 작가의 작품에는 형제가 자주 등장한다. 손을 잡고 괴물과 싸우는 아이들. 출판사 제공

김미우 작가의 작품에는 형제가 자주 등장한다. 손을 잡고 괴물과 싸우는 아이들. 출판사 제공

김민우 작가의 작품에는 늘 형제가 등장한다. 아마도 작가의 두 아들을 반영한 주인공들일 텐데,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고 경쟁하기도 하는 모습이 미화되지 않고 실감 나게 그려져서 재미있다. 전작 ‘달팽이’(웅진주니어, 2021), ‘하얀 연’(여유당, 2022) 등에서는 명백하게 남자 형제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이번 책에서는 남매인지 형제인지를 문맥 속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이미지도 중립적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온 동네를 휘저으며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 주인공 둘뿐인 것만 같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높은 언덕에 올라 동네를 굽어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꽤 열심히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학원에 가느라 바빠서, 밖에서 뛰어놀기에 눈치가 보여서 숨어 있는 것이 아니기를, 이 세상이 어린이들을 밖으로 불러내고 환대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수진 어린이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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