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EU 국가들 "러시아인 유럽 여행 금지해야"
독일 등 다른 EU 회원국은 시큰둥...미국도 반대
"전쟁 책임자와 러시아 일반 국민 구별 필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러시아인의 유럽행 환승 통로가 되면서 속앓이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하는 셍겐 조약에 묶여 있는 핀란드는 셍겐비자를 보유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제지할 방도가 없다. 문제는 러시아인에게 셍겐비자를 내준 유럽 국가들은 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러시아와 거리가 먼 국가라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와 발트3국에서는 러시아인의 유럽 여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인에게 관광 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핀란드는 다음 달부터 비자 발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핀란드로 입국하는 러시아인의 3분의 2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발급한 셍겐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후 러시아 비행기의 EU 내 비행이 금지되자, 비자를 보유한 러시아인들이 육로로 핀란드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핀란드뿐 아니라 체코, 폴란드 등 러시아와 인접한 동부 EU 회원국들은 EU 차원에서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EU 차원의 제재가 합의되지 않을 경우 (동부 EU 회원국끼리) '지역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나머지 EU 회원국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비자 발급 중단이) 러시아 정권에 동의하지 않아 러시아를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도 러시아인에 대한 일괄 비자 발급 중단에 부정적 입장이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과 러시아 일반 국민을 구분해야 한다는 이유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푸틴 대통령의 탄압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사, 인권 탄압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피난 통로를 차단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러시아인들이 유럽에 들어올 때 자국의 침략을 규탄하는 성명에 서명하도록 하거나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100유로의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러시아 부유층의 유럽행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유명 휴양지 생트로페즈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는 한 러시아 사업가는 "그곳엔 평소와 다름없이 많은 러시아인들이 있었다"며 "엘리트들은 언제나 그랬듯 유럽에 갈 방법을 찾을 것이고, 돈 앞에선 항상 허점이 있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EU는 오는 30일 체코에서 열리는 외무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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