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출신 바이올린 거장, 5년 만에 내한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 창단 25주년 기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이것은 현대 유럽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행보 중 하나입니다."
라트비아 출신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75)가 차별화되는 것은 연주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치·사회 현안에 의견을 밝히기를 주저하는 다른 예술가와 달리 '목소리를 내는' 음악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6개월이 된 24일 날아온 이메일 인터뷰 답변서에도 어김없이 그의 소신이 담겼다.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이웃 국가 침략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죠. 전쟁에 책임이 있는 러시아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사건에 무관심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다음 달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이끄는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함께 5년 만의 내한 무대를 갖는 크레머는 "차별적이고 부당한 행동에 맞서기 위해 모든 사람이 정치가가 될 필요는 없다"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비판 입장을 확실히 표명했다.
이는 라트비아가 소련 연방에 속해 있던 1947년 리가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크레머의 태생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음악적 성향과도 관련이 깊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크레머가 발트 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전도유망한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기 위해 1997년 창단했다. 크레머는 이때부터 전 세계 공연장과 국제 음악 축제에서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 왔다.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창단 2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의 연주 곡목도 신선하다.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형제들)'와 야캅스 얀체브스키스의 '리그넘(나무)', 아르투르스 마스카츠의 '한밤중의 리가' 등 발트 3국 작곡가 작품과 크레머가 위촉해 여러 명의 현대 작곡가가 슈베르트 작품을 기반으로 편곡한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를 연주한다.
크레머는 한국 음악팬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연주 프로그램에 대해 "현대 음악의 보석과 같은 작품"이라며 "항상 관객이 음악을 통해 지식과 감정의 폭을 넓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곡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트 3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길"이라며 "특히 프라트레스는 수년간 아껴온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고령임에도 왕성하게 세계 각국을 누비며 연주 활동을 하는 크레머는 한국 음악팬과도 비교적 자주 만난 사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가가 그렇듯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번에는 5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됐다. 크레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생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공연 일정이 줄었고 공연 인력이 감축됐으며 무대에 서는 연주자 숫자도 줄었다"며 "관대함이 소유욕에 대한 최고의 백신이자 인생의 만병통치약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16년 영국 음악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1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존하는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꼽히기도 한 크레머에게 진취적 삶의 원동력을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창의적으로 사는 겁니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젊게 유지하기 위해 프로젝트마다 젊은 연주자를 초청하고 있어요. 그게 나이보다 젊게 살게는 해 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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