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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만 공안사건 재심인데 무기징역 구형... "검찰이 두 번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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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만 공안사건 재심인데 무기징역 구형... "검찰이 두 번 죽였다"

입력
2022.08.24 13:0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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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기래 선생 '통혁당 재건위' 재심 사건
유족 "수사 당시 가혹행위, 무죄 선고해야"
검찰 "법정 진술 자유 의지" 무기징역 구형

박기래 선생의 유족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박창선씨 제공

박기래 선생의 유족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박창선씨 제공


명백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고(故) 박기래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재심청구인 겸 장남 박창선씨

지난달 5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03호 법정.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부축을 받고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2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텅 빈 방청석을 가득 채웠다. 고(故) 박기래 선생 재심 사건의 3번째 결심공판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박 선생은 1974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 선생이 한국을 공산주의에 물들게 하기 위해 창설했다 사라진 통혁당 재건 운동을 벌이는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게 골자다.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ㆍ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과 함께 197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으로 꼽힌다.

박 선생은 사형 선고 후 17년간 옥살이를 하다 감형을 받았고, 1991년 가석방됐다. 출소 뒤에는 통일운동에 투신하다 2012년 세상을 떠났다.

박 선생의 유족은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①박정희 정권의 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박 선생을 영장 없이 체포했고 ②수사 과정에서 폭행 등 가혹행위를 일삼아 유죄의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만큼 무죄라는 취지였다. 서울고법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재심은 난항을 거듭했다.울고검이 재심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 증거는 차치하더라도, 박 선생의 법정 증언은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뤄졌으므로 신빙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댔다. 서울고검 측은 “당시 박 선생을 포함한 피고인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있었다”며 “공판조서 등을 살펴보면 진술 내용을 거짓이나 조작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선고도 2번이나 밀렸다. 검찰이 무기징역 구형 의견서를 보충하고, 유족 측 또한 반박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판부가 추가 심리를 진행해야 했다.

박기래(오른쪽 두 번째) 선생 생전 모습과 공동 피고인들. 박창선씨 제공

박기래(오른쪽 두 번째) 선생 생전 모습과 공동 피고인들. 박창선씨 제공

유족 측은 “무기징역 구형은 박 선생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박 선생 장남 창선씨는 “수사기관에서 고문 등으로 허위자백을 했을 경우 법정에서의 자유로운 심리상태도 의심할 만해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수많은 사례가 있다”며 “아버지도 ‘재판 당시 심리적 공포심을 느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령부) 등의 수사기록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변호인 조력을 받았다’는 검찰 판단 역시 “박 선생이 자필로 쓴 항소이유서 등에서 허위자백을 진술하고 있는데도 당시 변호인은 구체적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 선생 재심 선고는 30일이다. 재심 접수 약 4년 만이다. 창선씨는 “이번에는 선고가 연기되지 않고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해 명예를 회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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