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펀드'를 설립한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줄리언 로버트슨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로버트슨이 이날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심장 관련 질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억만장자인 로버트슨은 조지 소로스와 함께 월스트리트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투자가였다.
그는 1980년 가족과 지인들에게서 800만 달러(약 107억 원)의 투자를 받아 타이거펀드를 설립했다. 타이거펀드는 출범한 해에 54.9%라는 경이적인 이익을 거뒀다. 이후에도 연평균 25%가 넘는 수익을 올리면서 10여 년 만에 220억 달러(약 29조4,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타이거펀드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SK텔레콤의 대주주로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 국내 투자가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그의 투자 비결은 단타 대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가치투자였다. 반대로 내실이 없는데도 주가가 비싼 기업에 대해선 과감하게 공매도를 시도했다.
가치투자라는 원칙은 성공의 요인이었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원인도 제공했다. 로버트슨은 닷컴버블 당시에도 가치투자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기술주를 대규모로 공매도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판단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1999년에는 19%에 달하는 손실을 봤고, 이듬해 초반에도 13.5%의 자산이 사라졌다.
자신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의 불만이 쇄도하자 로버트슨은 투자금을 돌려주고 타이거펀드를 정리했다. 가치투자라는 자신의 원칙이 더는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타이거펀드를 정리한 날부터 공매도 대상이었던 닷컴주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또한 타이거펀드가 보유했던 기업의 주식은 오르기 시작하면서 가치투자라는 그의 원칙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됐다.
한편 그는 타이거펀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 일했던 펀드매니저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독립을 도왔다. 지난해 국제 금융회사들에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 원)의 손실을 안긴 한국계 미국인 투자자 빌 황(한국명 황성국)도 로버트슨의 수제자 그룹인 '타이거 컵스'의 일원이었다.
'빅 타이거'라는 별명을 지녔던 그는 48세 때 타이거펀드를 설립하기 전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1932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섬유회사 경영인 가정에서 출생한 로버트슨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졸업한 뒤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이후 뉴욕의 한 증권회사에 주식중개인으로 취직한 뒤 투자 부문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면서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떠났다. 로버트슨이 1년간의 뉴질랜드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세운 회사가 타이거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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