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바람직한 가치관 형성 저해"
방송심의규정상 양성평등 규정을 위반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방송사들에 내려진 방통위의 주의 조처는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정희)는 최근 애니메이션 제작사 A사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제기한 제재 조치 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방송사들은 2020년까지 A사가 10여 년 전 제작한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를 방영해왔다.
방통위는 지난해 1월 "안녕 자두야의 일부 에피소드가 방송심의규정상 양성평등 규정을 위반했다"며 방송사들에 주의 조처했다. "선크림을 발라라. 여자 얼굴이 그게 뭐냐" "공부 잘해도 못생기면 결혼도 못하는 세상이야. 그러게 처음부터 예쁘게 낳아줬으면 됐잖아" 등의 내용이 성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A사는 방통위 조처에 불복해 "방송사들에 내려진 주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사는 "방통위는 주의를 주기 전에 제작자 측에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의 조치를 받은 건 방송사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실질적 당사자는 A사이므로 의견 진술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였다. A사는 "주의 조처는 에피소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주제 의식을 간과한 것이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법원은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절차적 위법 문제에 대해선 "A사는 방송사들이 부여받은 의견 진술 기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의견 진술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애니메이션 에피소드가 내용적으로도 양성평등 규정을 어긴 게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에피소드에는 여성은 능력이 뛰어나도 외모가 예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고, 결혼을 못 하거나 남성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여성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차별을 담고 있다"며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어린이들은 방송 내용의 함의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며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내레이션에 성차별 요소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가치관 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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