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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국기에 경의를 표할 수 없다

입력
2022.08.2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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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콜린 캐퍼닉

2011년 나이키 광고에 등장한 콜린 캐퍼닉.

2011년 나이키 광고에 등장한 콜린 캐퍼닉.

미국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프리시즌 홈 3차전 경기가 열린 2016년 8월 26일,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기립 관행을 무시한 채 벤치에 머문 한 선수가 있었다. 우연히 그 광경을 지켜본 기자가 경기 후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나는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국가의 국기에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 일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겐 축구보다 그게 더 중요한 문제다.(...) 지금도 거리에는 시신이 있고, 살인을 저지르고 유급휴가를 받은 이들이 있다.” 흑백 혼혈의 스타 쿼터백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 1987~)이었다. 흑인 청년들이 경찰 가혹행위로 잇달아 숨진 직후였다.

그는 며칠 뒤 경기부터는 군인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무릎을 꿇어 시위를 지속했고, 팀 동료 등 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그의 시위에 동참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그의 시위를 헌법의 권리라며 동조했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TV 인터뷰 등을 통해 ‘다른 나라로 이민 가라’로 조롱했다. 캐퍼닉은 논란의 중심에 놓였고, 지지뿐 아니라 살해 위협도 받았다.

캘리포니아 백인 부부의 입양아로 성장한 그는 2006년 축구 장학생으로 네바다대에 진학했고, 주전 공격수로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다수의 상을 받았다. 2011년 포티나이너스에 입단해 이듬해 시즌 팀 플레이오프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치른 슈퍼볼에서도, 비록 34-31로 패하긴 했지만 그는 2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시위 여파로 그는 2016년 말 팀을 떠나야 했고, 이후 어느 팀의 입단 제의도 받지 못했다. 나이키는 ‘Just Do It’ 캠페인 30주년이던 2018년 그를 CF모델로 기용했다. 광고 카피는 “뭔가를 믿어라. 비록 그것이 모든 것의 희생을 의미할지라도(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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