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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수에 세금 매기고, 수염세도 거두고...세금 역사는 황당하게 발전했다

입력
2022.08.19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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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본 농담 같은 세금 이야기
'세금의 흑역사'

세금의 흑역사ㆍ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ㆍ세종서적 발행ㆍ568쪽ㆍ2만2,000원

세금의 흑역사ㆍ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ㆍ세종서적 발행ㆍ568쪽ㆍ2만2,000원

세금 앞에 장사 없다. 영국 ‘신사’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1697~1851년 창문 개수에 비례해 세금을 매겼다. ‘큰 집에 많은 세금을’이란 원칙이었다. 세금을 피하려는 시민들은 벽돌과 진흙, 소똥으로 창문을 막았다. 채광과 통풍이 안 돼 질병이 퍼졌다.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이렇게 한탄했다. “창문세 부과 이후 빛도 공짜가 아니게 됐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생활필수품(빛과 공기)을 아껴야 했다.”

농담 같은 창문세에도 간과할 수 없는 정부의 고민이 담겼다. “어떻게 하면 부에 차등적으로 세금을 매길 수 있는가.” 하지만 공정히 과세하려는 시도가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악화시킨 것처럼 아이러니한 결과를 내기 일쑤다. 마이클 킨 국제통화기금(IMF) 공공재정국 부국장과 조엘 슬렘로드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책 ‘세금의 흑역사’에서 단언한다. “세금은 모든 공적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다.”

보스턴 항구에서 미국인들이 영국의 차 세금에 반발하며 차를 내다버리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보스턴 항구에서 미국인들이 영국의 차 세금에 반발하며 차를 내다버리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인류의 잔머리는 세금 분야에서 만개했다고 할 만하다. 400년 전 폴란드, 네덜란드는 ‘집의 정면이 도로에 얼마나 넓게 접하는지’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하자 기형적으로 폭이 좁은 ‘성냥갑’ 집이 들어섰다. 1990년 유럽연합이 담배세를 매겼다. 그러자 35㎝ 길이의 ‘롱 담배’, 직접 말아 피는 ‘롤 담배’가 유행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한술 더 떴다. 아예 법인세를 피해 네덜란드, 카리브해 등 조세 피난처로 회사 주소를 옮겼다.

“인간은 세금 부담 자체를 불평등 못지않게 고통스러워한다.”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토머스 홉스의 말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못해 세상도 뒤집었다. 1773년 미국 독립 전쟁은 대영제국의 ‘차(茶) 세금’에 반발해 발생했다. 1852년 뉴욕에선 여성들이 외쳤다. “투표권 없이 세금도 없다.” 2018년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 엘리트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깔렸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통찰. "세금 문제는 부와 권력의 재분배와 맞닿아 있다."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한 가지다. ‘공정한 세금이란 무엇인가.’ 가령 고대 잉카에서는 극빈층에게도 몸에 붙은 ‘이’를 세금으로 내게 했다. ‘가난하다고 아예 세금을 내지 않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고민이 담겼다. 교정 목적세의 경우 어디까지 공정한 것일까. 러시아 표트르 1세는 1698년 귀족들의 ‘털투성이 얼굴’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수염세’를 거뒀다. 황당하게 보이지만 교정 목적이란 측면에선 탄소세와 동전의 양면이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기업들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폴란드의 '성냥갑집'. 게티 이미지

폴란드의 '성냥갑집'. 게티 이미지

혈기왕성한 조상들의 '투쟁기'를 읽다 보면 ‘현대인은 왜 고분고분 세금을 내는가’라는 궁금증도 생긴다. 18~19세기 전쟁의 여파다. 영국 내전, 미국 독립 전쟁 등으로 국가 곳간이 비면서 토지세, 소비세 등이 도입된다. 제1차 세계대전도 정부의 징세권을 키웠다. 가난해진 정부는 전쟁 특수를 누린 기업에 돈을 걷기 위해 법인세를 도입했다. 전시를 방불케 한 코로나19 상황도 정부의 위상을 키웠다.

세금을 둘러싼 논란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통계’를 보여주는 의젓함이 이 책의 미덕이다. ‘세율을 낮추면 세금이 많이 걷힌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에 저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소득세를 대폭 인하했지만 세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를 위한 법인세 인상’이라는 진보 슬로건도 일부 틀렸다. 고용 저하 등으로 법인세의 25%는 노동자가 부담한다. 저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중요한 것은 세금 자체가 아니라 세금의 목적과 국민들의 합의 여부다”.

우리가 창문세와 수염세를 보고 킬킬거렸듯 미래 세대는 현대 세금체제를 보고 박장대소할 수 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좋은 세금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저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적 피해를 막으려고 제때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탄소세 주장을 넌지시 옹호한다. 다국적 기업의 탈세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가 세금 규칙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코로나19로 확대된 경제 불평등을 좁히기 위해 부자 증세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것도 저자들의 관측.

황당하지만 흥미진진한 세금의 역사를 읽다 보면 저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슬램로드 교수는 기발한 연구에 주는 ‘이그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상속세가 높아지면 사망률이 줄어든다. 더 오래 살려 하거나 사망 신고를 늦게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숨기고 싶은 인간 본성을 '숫자'로 끄집어내는 기질은 한국판 서문에도 자비 없이 발휘된다. “한국 독자는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 국제 기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낸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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