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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서만 자라는 신비한 명품 수박… "자연의 맛 그대로"

입력
2022.08.22 04:00
수정
2022.08.22 08:33
19면
0 0

<32> 우리 고장 특산물 : 광주 '무등산수박'
고려시대 몽골서 들어온 수박 종자
강원도서 재배 시도했지만 실패로
완숙한 퇴비나 유기질 비료만 사용
고령화로 재배 농가·수확량 감소세

지난 5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에서 농민이 수박을 살펴보고 있다. 무등산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2~3배 크고 감칠맛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광주 북구 제공

지난 5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에서 농민이 수박을 살펴보고 있다. 무등산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2~3배 크고 감칠맛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광주 북구 제공

아이러니 하나. 올해도 광주광역시 무등골에서 단연 으뜸이 나왔다. 무게 28㎏. 등급이나 차별이 없는 산, 무등산이 낳은 수박 얘기다. 맛은 둘째 치고, 일단 크기가 '무등산수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등산 수박 재배 농민들 표현을 빌리자면 "일반 수박보다 애들 머리 한두 개는 더 있제. 허벌나게 크당께."

아이러니 둘. 수박이 정치권으로 옮겨가면 본질이 변하기 일쑤다.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뜻하는 은어로 쓰이는데, '강남'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식이다. 수박을 부적절한 비유에 사용한 경우다. 농민들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느그(너희)들이 수박을 알아? 이런 썩을 것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 내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수확한 수박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고 있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 내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수확한 수박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고 있다.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 해발 300m 기슭에 오르면, 이런 형용모순의 실체를 만난다. 무등산수박밭이다. 언뜻 보면 그저 그런 수박밭이겠거니 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박이 무등산 품에서만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농민 문용덕(58)씨는 "무등산수박은 무등산 이외 지역에선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며 "게다가 수박 한 포기에 한 통밖에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귀하다"고 말했다.

무등산수박의 유래는 35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30~1240년쯤 고려인 홍다구가 몽골에서 수박 종자를 들여와 개성에서 재배했고, 이 수박이 1672년쯤 무등산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무등산수박이 무등산에서만 생산되는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농민들은 "예전에 전남대 교수들이 3년을 연구했는데 결국 못 밝히고 두 손을 들더라. 몇 년 전에도 강원도 산에 무등산수박을 심어봤지만 실패했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공동판매장에 진열돼 있는 수박.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공동판매장에 진열돼 있는 수박.

무등산수박이 신기하고 묘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이야 하우스 재배가 대세지만, 노지 재배의 경우 한 번 경작한 땅은 인삼처럼 3년이 지나 땅심이 회복돼야 다시 재배가 가능하다. 특히 평지가 아닌 해발 300m 이상의 무등산 기슭 중에서도 통기성이 좋은 사질양토(진흙이 비교적 적게 섞인 보드라운 흙) 경사지가 아니면 재배하기 힘들다.

무등산수박에 화학비료 사용은 금기 사항이다. 농민들은 완숙한 퇴비나 유기질 비료만 사용하며 무등산수박을 신성시했다. 실제 농민들은 수확기가 다가오면 상가에도 가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이 수박밭에 오면 수박이 쪼개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에 여성들을 밭에는 얼씬도 못하게 할 정도다.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공동판매장에 진열돼 있는 수박.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공동판매장에 진열돼 있는 수박.

그만큼 농민들은 스스로를 "무등산수박지기"라고 부를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광배 무등산수박 생산조합 총무는 "무등산수박지기들은 집집마다 자기만의 수박씨를 350년 동안 대물림하며 명맥을 이어왔다"며 "현재로선 종자 개량을 통한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수박만 키워선 먹고살기 힘들지만 광주 특산품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미 농가 고령화와 까다로운 재배 방법으로 수박 농사를 접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7가구였던 재배 농가는 현재 9가구(재배 면적 2.6㏊)로 줄었고, 생산량도 올해는 예년 수준(2,500통)을 밑돌 것으로 농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은 건 아니다. 이들은 "자연의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했다. 문 총무는 "무등산수박은 인공(품종 개량)으로 당도를 높인 일반 수박보다 당도(10~11브릭스)는 다소 떨어지지만 전통 재배 방식을 고집한 탓에 감칠맛이 오래 지속되는 등 '자연의 맛'을 함축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무등산수박이 '명품 수박', '약(藥)수박'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무등산수박에는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이 100g당 5.5㎎ 들어 있는데, 이는 일반 개량 수박(4.1㎎)보다 많다. 요소 합성을 도와 이뇨작용을 촉진시키는 시트룰린 함유량(100g당 220㎎)도 높다.

23㎏짜리 무등산수박.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수박 중 가장 컸다.

23㎏짜리 무등산수박.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수박 중 가장 컸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생산조합 공동판매장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수박을 선별 출하하고 있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생산조합 공동판매장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수박을 선별 출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무등산수박 가격은 녹록지 않다. 올해 수확된 가격을 보면 8㎏은 시중 판매가와 비슷한 3만 원이다. 그러나 크기가 커질수록 가격도 올라가는데, 14㎏은 9만 원, 16㎏은 11만 원, 18㎏은 14만 원, 24㎏은 26만 원이다.

무등산수박은 공동판매장을 통한 선별 출하와 품질 인증 등 엄격한 관리를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농민들이 무등산수박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내놓은 자구책이다. 무등산수박지기의 노력에 발맞춰 행정기관도 거들고 나섰다. 광주 북구는 무등산수박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2019년부터 전북도농업기술원과 시험포장을 운영,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재배 방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광주 북구 관계자는 "전통 재배기술 교육뿐 아니라 생산 및 판매 여건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배 농가에 매년 친환경 농자재와 생산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무등산수박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농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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