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슈퍼 스마트팜 브랜드 '내일농장' 첫 상품
양계 농가 가 보니…산란부터 출고까지 자동화
남창희 대표도 동행…"'퇴근길 직장맘' 잡아야"
여기로 차 끌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주차는 나가셔야 하고요. 밖에서 신발 갈아 신고 걸어서 들어와주세요.
3일 오전 10시 찾은 경기 포천시 국내 최대 규모의 양계기업 가농바이오에서는 삼엄한 경계 태세가 느껴졌다. 외부 오염원과 접촉을 완전히 막겠다며 차는 먼 곳의 주차장에 세웠고, 바깥 출입문에서부터 신발을 내부용으로 갈아 신어야 했다.
방문객은 닭이 있는 6개 계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농장 내 목욕 시설에서 몸을 씻고 속옷까지 벗은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입장이 가능하다. 다른 동으로 이동할 때나 계사 밖을 나갈 때도 목욕을 해야 해 많게는 한 명당 3회 이상도 몸을 씻는단다.
항생제와 살충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가농바이오 측의 설명이다. 닭이 알을 낳아서 출고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자동화해 단 한 번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계란을 납품한다. 이렇게 나간 계란은 롯데슈퍼에서 '내가 처음 집는 무항생제 계란'이라는 이름으로 진열대 위에 오른다. 롯데슈퍼가 건강한 먹거리를 지향하며 4월 선보인 스마트팜 브랜드 '내일농장'의 첫 상품이다.
이날 남창희 롯데슈퍼 대표는 가농바이오를 찾아 출고 과정을 지켜봤다. 남 대표는 "주 고객층인 '퇴근길 직장맘'을 슈퍼로 불러오려면 신선식품의 상품력이 중요하다"며 "계란을 시작으로 더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미래 먹거리로 스마트팜 상품들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마저 기계로…모든 과정 자동화
산란한 계란을 출고하는 GP센터는 세척과 선별 및 검란, UV살균, 등급 판정 등 모든 절차가 자동화로 이뤄진다. 먼저 ①6개 동에서 산란한 계란은 방역을 위해 구축한 지하 터널의 3단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진다. 1단에 2개 동씩, 시간당 최대 18만 개의 계란이 이 터널을 지난다. ②이어 선별기에서 카메라로 찾아낸 깨진 계란을 따로 버리고, 계란의 위아래 모양을 맞춰 똑바로 세운다. ③세척기에서 이물질과 균을 세척하고 건조기에서 물기를 말리면 카메라로 다시 한번 불순물을 찾는다. ④미세한 금은 음파기로 음파 차이를 판별해 걸러내고, UV살균기에서 미생물을 살균처리한다. 이후 ⑤규격과 무게에 따라 소·중·대·왕란 등으로 나눈 뒤 포장한다.
계사 안의 닭에게는 '특별한 돌봄'을 준다. 스마트팜 시스템으로 건강 상태를 챙기고 유산균과 칼슘, 엽산, 비타민 등 영양 성분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심지어 닭의 몸무게와 사료의 양까지 데이터로 만들어 닭의 상태에 따라 사료도 자동으로 준다. 유상원 가농바이오 생산본부 이사는 "오래 전엔 사람 손으로 챙겼지만 닭이 늘어난 지금은 불가능하다"며 "개별 닭 관련 정보를 데이터화한 뒤 매월 가장 성적이 좋았던 군의 데이터를 따로 분석하면서 계란 품질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농바이오에서 키우는 닭은 산란계(産卵鷄) 120만 마리, 병아리 40만 마리 등 총 160만 마리로 하루 평균 95만 개의 계란을 내보낸다. 유재국 가농바이오 대표는 "농가에서는 보통 3년 주기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온다고 얘기한다"며 "병균 없는 스마트팜 농가로 디자인한 덕에 외부 요인에도 항상 일정한 출고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선식품 차별화로 '스마트팜' 주목한 이유
이날 남창희 대표는 가농바이오에서 개발한 수비드 계란(수란) '모닝에그'를 놓고 유 대표와 상품화 전략을 논의하기도 했다. 예정에 없는 깜짝 토론이었다. 남 대표는 파우치 형태로 포장된 모닝에그를 보고 "슈퍼에서는 내용물이 포장재 밖으로 보여 특징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며 "파우치 대신 용기에 담으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유 대표는 "포장재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며 "아직은 온라인 위주로 파는데 슈퍼에 내보내도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내가 처음 집는 무항생제 계란'은 직장맘들을 겨냥해 상품화했다. 롯데슈퍼에 따르면, 신선식품 중 직장맘들이 계란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남 대표는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서는 일주일 동안 먹을거리를 한꺼번에 사지만 슈퍼에서는 그날그날 필요한 저녁거리를 구매하러 오는 경향이 강하다"며 "때문에 얼마나 좋은 품질의 신선식품을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녀를 위해 좀 더 건강하고 위생적인 신선식품을 찾는 욕구가 큰 만큼 깨끗하고 품질 좋은 스마트팜 농·축산물이 승산이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가농바이오는 평소 스마트팜 사업에 관심이 많던 남 대표가 우연히 방송에 공개된 이곳의 설비와 출고 공정을 보고 수소문해 찾아냈다. 남 대표는 "스마트팜 관련 방송도 아니었는데 이곳의 최첨단 설비가 눈에 들어오더라"며 "따로 조사해 보니 이렇게 오염 없고 안정적인 곳이라면 롯데슈퍼 이름으로 나갈 스마트팜 상품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농·축산물은 날씨, 병충해 등 재배 환경에 따라 작황 부진으로 출고량과 판매가가 널뛰기하는 경향이 강한데, 스마트팜 재배는 환경 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면서 수확 물량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가격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세계적 물류 불안정과 갑작스러운 한파가 겹쳐 '양상추 파동'이 일어났을 때도 스마트팜 양상추 재배 농가와 계약을 맺어 큰 문제 없이 물량을 확보했다. 당시 시장 경매가 기준 kg당 2,000원대였던 양상춧값이 최고 9,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일부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양상추를 빼고 제품을 만들었던 반면 롯데마트는 일정한 가격(3,000원대)에 공급했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팜 재배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 노지 재배 작물보다는 판매가가 높은 편이지만, 공급의 안정성을 따진다면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슈퍼는 계란 외에도 버섯, 쌈채소, 방울토마토 등 22개 상품을 내일농장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조만간 계란 다음으로 잘 팔리는 두부와 콩나물도 스마트팜 상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남 대표는 "스마트팜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사업이라 투자 대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부가가치가 큰 농산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며 "스마트팜으로 재배하기 용이하면서도 부가가치가 큰 품목을 발굴해 스마트팜 신선식품의 판매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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