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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삼만리'의 아르헨티나, 몰락한 부국의 슬픈 현실

입력
2022.08.16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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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정
민원정칠레 가톨릭대 교수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전해준다.


한때 유럽 이민자 몰렸던 나라
대공황 이후 경제는 악화일로
부정부패로 2022년 역시 암울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소년 마르코는 돈을 벌기 위해 남미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 홀로 대서양을 건넌다. 우리에게는 일본 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로 알려진 이 13세 소년의 이야기는 원래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쿠오레(마음)'(1866)에 수록된 단편 '아펜니노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품이 탄생한 시기는 이탈리아가 독립 후 얼마 안 지났을 때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독립과 더불어 반도 전체의 통일이라는 이중 과제로 혼란스러웠다. 작가는 어린 소년을 합심해 도와주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통해 지역주의를 벗어나 하나의 이탈리아인이 되자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은 이 작품을 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돈을 벌기 위해 해외, 특히 신대륙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이탈리아도, 아르헨티나도, 낙후된 경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기회보다 사람이 넘쳐나던 이탈리아와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남아도는 땅과 돈을 감당할 인력이 부족했다. 거센 산업화의 혜택이 주로 북부 공업지대의 노동자들 차지가 되던 이탈리아에서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던 남부 사람들은 외국에 이민 문호를 활짝 열어젖힌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친근한 언어와 문화에 고임금까지,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매력 넘치는 행선지였다. 일부는 이웃 나라인 우루과이로 건너가기도 했다.

1860~1914년 사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수는 200만 명에 달했다. 1895년 약 400만 명이던 아르헨티나 총인구는 1914년 약 790만 명으로 늘었다. 아르헨티나는 금은보화가 없다는 이유로 정복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독립 이후에도 영토의 3분의 1 이상을 버려진 땅으로 내버려 두어야 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급격하게 유입된 자본과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 노동력에 힘입어 경제는 세계 10대 부국에 들 정도로 급성장했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1850~1930년 사이 아르헨티나에는 600만 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독립 이후 원주민 말살 정책에 더해 급증하는 유럽 이민 덕에 아르헨티나는 여타 중남미와는 다른 백인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려던 염원까지 이뤘다.

이어지는 이민 행렬로 아르헨티나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났다. 개척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노력과 운에 따라 계급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축산업과 양모 수출 등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2차산업 발전을 소홀히 한 탓에 경제 기반은 매우 불안정했다. 결국,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가 닥치고 군부 쿠데타 등으로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국가 경제는 파산했다. 유럽 이민의 반 정도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이는 아르헨티나에 상처를 남겼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하고 쓸쓸한 흔적은 오늘날에도 인구의 62.5%에 달하는 이탈리아계, 이탈리아어 억양이 섞인 스페인어, 음식, 유럽풍의 도시에 남아 있다.

마르코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갔지만, 아르헨티나에 남아 있는 이탈리아 후손들은 과거 영광을 껴안고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속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블룸버그는 현재 연평균 60%를 웃도는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율이 2022년 말에는 약 90%에 달할 거라고 예측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정치 불안정과 부정부패는 식민지 시절에 비롯됐고 이탈리아 이민 탓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모든 이탈리아 이민들이 성공했을 리는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 이민자들의 탓만도 아니다. 그러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책임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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