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마이크 피기스 감독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 맡아
“한국 드라마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김희애가 주연한 ‘밀회’를 가장 좋아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즐겨 봅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음악은 전형적입니다. 비싼 음식점 장면에선 늘 쇼팽의 음악이 흐르는 식이죠.”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와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1989) 등으로 유명한 영국 감독 마이크 피기스(74)가 지난 11일 개막한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생활문화센터산책에서 피기스 감독을 만났다.
피기스 감독은 지난해 ‘올해의 큐레이터’로 영화 6편을 추천하며 제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올해는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일하면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장까지 맡았다. 하지만 제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비자를 준비하고 비행기 표까지 끊었으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났다. 그는 “영화학교 강의나 영화제 참석을 위해 서울과 부산을 간 적 있으나 대도시 밖은 처음”이라며 “제천은 확연히 달라 흥미롭다”고 말했다. 피기스 감독은 “올해는 영화 3편을 선정했다”며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매년 한국에 올 이유가 생겨 좋다”고 덧붙였다.
피기스 감독의 한국 사랑은 깊다. “영국 문화보다 한국 문화에 더 관심 있고 더 즐긴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는 전 세계가 찾는 시대 정신이 됐다”며 “많은 해외 영화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피기스 감독은 음악을 잘 활용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곤 한다. 그는 밴드에서 기타와 트럼펫 등을 연주하다 마흔에 늦깎이로 영화에 입문했다. 영화를 연출할 때 음악감독을 겸하며 작곡까지 해왔다. 알코올중독자와 거리 여성의 사랑을 그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영화음악만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요즘 영화들은 음악들이 너무 지나치다”며 “음악이 영화 산업의 노예가 됐다”고 꼬집었다. 상업영화들이 관객 감정을 끌어내려 음악을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피기스 감독은 “음악이 아예 없거나 약간의 음악이 추가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더 자극하는 방식이 훨씬 좋다”며 “음악 사용이 늘어난 다큐멘터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기스 감독은 “한국 영화는 미국 영화보다 세련된 경우가 많고, 음악이 잘 사용되기도 한다”면서도 드라마 음악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런 장면에서 이런 음악이 나와야 된다는 고정 틀이 있는 듯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드라마 시장이 영화보다 훨씬 크고 성장 가능성이 크니 드라마 음악을 보다 잘 만들면 확장의 여지가 더 클 것”이라고 짚었다.
피기스 감독은 2019년부터 독립영화 ‘쉐임’을 한국에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미투’를 소재로 한 3가지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미국 영국 등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 대중문화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려보고 싶어” 기획했다. 그는 “한국 대중문화를 오랫동안 즐기면서 가수 설리의 죽음처럼 산업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연기력이 매우 뛰어난 한국 배우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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