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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것도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현대인의 잠을 비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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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것도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현대인의 잠을 비틀다

입력
2022.08.18 04:30
수정
2022.08.18 10:5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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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284, 다음 달 12일까지 '나의 잠' 전시
조각부터 영상까지 작품 70여점...현대인의 '잠' 고찰

김홍석 작가의 조각작품 '침묵의 공동체'. 서로 다른 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인의 잠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김홍석 작가의 조각작품 '침묵의 공동체'. 서로 다른 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인의 잠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옛 서울역사 중앙홀에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 있다. 강아지, 당나귀, 양, 쥐, 곰 등 탈을 쓰고 한 공간에 널부러져 있는 이들은 저마다의 잠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누구일까. 각자의 옆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이런 식의 설명이 붙어 있다. "강아지 탈을 쓴 이 남자분은 현재 무직이며, 미술가는 인력소개소를 통해 이분을 소개받았습니다. 이 행위는 오전 10시에서 정오, 오후 1시에서 오후 6시까지 하루 총 7시간 진행됩니다. 이 행위가 끝나면 미화 80달러를 현금으로 받습니다." 탈 쓴 이들의 직업은 무직뿐만 아니라 화물차 운전사, 태권도 사범, 대학생, 영화배우, 청소부, 현대무용가 등 제각각으로 소개돼 있다. 이들은 정말 아르바이트로 행위 예술에 참여한 것일까.

지난달 19일부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나의 잠'에 설치된, 김홍석 작가의 '침묵의 공동체'의 풍경이다. 메인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이 작품에서 탈을 쓴 이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모형이다. 현대인의 불안한 잠을 표현하는 행위 예술을 다시 한 번 비튼 셈이다. 김홍석 작가는 "이들의 행위는 잠든 것도,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경계의 영역에 놓여 있다"며 "현대인의 잠에 관한 모호한 관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이 전시의 주제는 '잠'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작가 19명이 잠을 주제로 회화, 조각, 설치미술, 영상 작업을 펼쳤다. 전시 작품 가운데 80% 이상이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이다.

박가인 작가는 자신의 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에서 실제 잠을 자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박가인 작가는 자신의 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에서 실제 잠을 자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박가인 작가는 실제 자신의 방을 그대로 옮긴 설치 작품 '갈팡질팡하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박 작가는 자신의 방에 있는 소품과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고, 잠을 자는 퍼포먼스도 한다. 작가의 지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휘장을 들추고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이 공간은 작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잔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잠과 관련된 사연을 투영한 작품도 있다. 이성은 작가의 작품은 카메라와 거울, 모니터로 이뤄진 작품에 관람객이 눈을 대면 흡사 유체이탈을 하듯 2~3초 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일상생활 중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신경질환인 기면증을 앓고 있는 이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가는 "기면증 환자에겐 자각몽과 유체이탈이 일상"이라며 "잠과 삶의 경계는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민수 작가는 낮과 밤이 뒤바뀐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한 영상 '신기술'을 선보였다. 영상에 담긴 윤전기의 소음과 택배, 스티로폼 부스러기에 파묻힌 컨베이어벨트 모터 등에는 신문사 윤전실에서 근무했던 오 작가 아버지와 배달업체, 물류창고 등에서 일했던 오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한다.

유비호 작가는 영상 '예언가의 말'에서 눈을 감고 잠들어 있지만, 잠꼬대하듯 읊조리며 미래를 내다보는 한 예언가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깨어 있는 이들이 잠들어 있고, 오히려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든 예언가가 더 깨어 있는 듯한 역설을 드러낸다.

유비호 작가의 영상 작품 '예언가의 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유비호 작가의 영상 작품 '예언가의 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작품을 순서대로 관람하다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상인 잠이 아주 비밀스럽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전시를 총감독한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는 "경쟁사회에서 통상 잠은 줄여야 하는 시간이지만 사실 잠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며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한 '1인칭의 세계'라는 점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관람을 마치고 잠시 단잠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실제 잘 수 있는 침대을 갖추고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슬립존'이 마련돼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2일까지.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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