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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전사자 윤의생 일병 신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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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전사자 윤의생 일병 신원 확인

입력
2022.08.1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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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될 수 없다" 국군 자원 입대
1950년 춘천-화천 진격전에서 전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윤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윤의생 일병 유해 최초 식별 당시 모습. 국방부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윤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윤의생 일병 유해 최초 식별 당시 모습. 국방부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10년 5월 강원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6ㆍ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故) 윤의생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유해로나마 72년 만에 가족을 만나게 된 윤 일병은 경북 문경시 생가로 향한다.

윤 일병은 1932년 1월 15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윤 일병은 “여기에 있다가 북한군이 될 수는 없다”며 그해 8월 대구훈련소로 입대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 이후 중부지역의 38도선 돌파 및 진격 작전이었던 1950년 10월 5∼8일 춘천-화천 진격전에서 임무 수행 중 전사했다고 국유단은 설명했다.

윤 일병의 유해는 12년 전인 2010년 5월 국유단과 육군 27사단 78연대 장병들이 발굴했다. 하지만 유해와 일치하는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없어 신원 확인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2020년 6월 고인의 남동생이 6ㆍ25 전사자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북 문경시 보건소 직원의 권유로 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이뤄졌고 정밀 분석 결과 윤 일병의 형제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발굴 12년 만에 가족을 찾게 된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윤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윤의생 일병 유품인 요대. 국방부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윤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윤의생 일병 유품인 요대. 국방부 제공


윤 일병의 남동생 윤정수씨는 형님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에 “북한군에 가지 않으려고 국군으로 입대한 진정하고 참된 애국자였던 형님이었기에 꼭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형님의 생가이자 어릴 때 놀던 소나무가 있는 집에서 (신원확인 통보 행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유단은 윤 일병의 신원확인 통보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오는 18일 경북 문경시 생가에서 실시된다고 밝혔다.

고인의 생전 모습은 입대 전 북한군 보복 행위를 우려해 집에 있던 본인 사진과 소지품을 모두 불태운 까닭에 남아있지 않다. 대신 유해가 발굴된 지점에 고인의 허리띠가 남아 있었다고 국유단은 설명했다. 한편 윤 일병의 가족을 찾게 되면서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후 6ㆍ25 전사자 총 194분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게 됐다고 국유단은 밝혔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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