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마존 원주민에겐 착시가 없다

입력
2022.08.11 20:00
25면
0 0
오성주
오성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오성주

ⓒ오성주

전남 곡성에는 섬진강이 흐른다. 섬진강을 따라 마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들을 이어 주는 다리도 많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고달리 마을에도 유명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강물이 넘쳐도 물이 잘 흐르도록 만들어진 잠수교로 난간도 없고 달랑 상판만 있다. 철로 된 다리는 100m 길이인데, 상판에는 작은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다. 강물이 넘치면 이 구멍들 사이로 물이 '퐁퐁' 새어 나와 사람들은 '퐁퐁 다리'라고 부른다. 다리가 놓인 지역은 '침실 습지'로 불리는 곳으로 원시적인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강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자연물들은 불규칙하고 모양이 삐뚤빼뚤하다. 반면, 퐁퐁 다리는 완벽한 직선이다. 그래서 퐁퐁 다리의 직선은 어떤 예술적인 기괴함과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데, 비가 많이 와 강물이 굽이쳐 흐를 때면 더욱 그렇다.

다리를 한쪽 끝에서 보면 선 원근이 분명하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다리의 폭은 처음에는 넓다가 멀어질수록 점점 좁아져 노란색으로 표시된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물론 이것은 우리 눈에 맺힌 다리의 상에 관한 것이다. 퐁퐁 다리의 폭은 모든 지점에서 똑같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눈에 맺힌 다리의 폭이 멀어질수록 좁아져도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시각 기술인데, 우리 뇌는 사물의 크기를 볼 때 눈에 맺힌 크기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떨어진 거리를 감안한다. 이 기술을 이용해 재미있는 착시를 만들어 보자. 사진 앞쪽에 있는 엄마와 아기의 발끝에서 손끝까지 길이를 자로 재 보면 엄마가 아기보다 두 배 길다. 뒤에 있는 아기는 앞에 있는 아기를 포토샵을 이용해 복사하여 그대로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아기는 엄마 옆에 있는 아기보다 훨씬 커 보이고 심지어 엄마보다 더 커 보인다. 이것은 우리 뇌가 아기가 서 있는 곳까지 거리를 감안하기 때문이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일수록 우리 눈에는 작게 맺히므로 이를 감안하여 멀리 있는 아기를 크게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리의 선 원근은 사물이 놓인 위치를 알려 주는 깊이 단서를 분명하게 제공하여 아기의 크기 착시를 일으킨다.

선 원근은 현대식 다리뿐만 아니라, 인간이 반듯하게 세운 빌딩이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선 원근은 과거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 거대한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화가들은 어떻게 하면 대상을 좀 더 사실처럼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코는 1,415년 선 원근의 원리를 발견하였고, 이것은 순식간에 화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기술로 자리 잡았다. 인류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선 원근의 발견은 비교적 늦다. 아마도 서양 건축처럼 반듯한 건물들이 도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늦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반듯한 건물들을 평소에 많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선 원근 착시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아마존 밀림에 사는 원주민들은 이런 착시를 도시인들보다 훨씬 적게 경험하거나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탁 트인 곳에 놓인 반듯한 건물들에 대한 시각 학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살던 옛날 사람들도 반듯한 건물들을 자주 보지 못해 선 원근 착시를 경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궁궐이나 종로에 있는 종묘처럼 똑같은 길이의 기둥들이 길게 늘어선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현대인처럼 선 원근 착시를 경험했을지 모른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