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미학·현대적 디자인 '조화'...관악산 절경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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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미학·현대적 디자인 '조화'...관악산 절경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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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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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선유재의 정면. 1, 2층 매스가 만드는 단단함과 상부의 부드러운 곡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경기 과천의 관악산 끝자락. 흡사 산맥의 일부인 듯 산세와 조화를 이룬 단독주택 '선유재(대지면적 264㎡, 연면적 342㎡)'의 자태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이 땅은 건축주 부부가 10년 동안 서울 근교의 주택지를 찾아다니다가 단박에 계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앞엔 관악산 능선이 펼쳐지고 주변은 바위들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고 뒤편으로는 여러 채의 인가가 어울려 있는 등 건축주가 바라는 조건이 두루 충족된 터였다. "땅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기운을 받쳐줄 수 있는 강인한 집을 짓고 싶었어요."

부부는 그런 바람으로 웅장미가 돋보이는 건축 작업을 해온 조호건축의 이정훈 소장에게 설계를 부탁했다. 이 소장은 건축주가 그랬듯 땅의 아우라에 반해 홀린 듯이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한다. 그는 "주어진 땅의 형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가가 설계의 핵심이었다"며 "유려한 산세를 이어받으면서도 주변 암석의 드센 기운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입체적인 디자인 계획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1층 거실과 부엌으로는 바닥 레벨의 낮은 단을 외부로 설치해 안정감을 줬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2층 테라스는 모든 방의 외부 출입문과 연결돼 층을 관통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자연을 닮았으면서도 강인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 단순명료했던 집 짓기의 목표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구현됐다. 한옥을 닮은 지붕은 부드러운 멋을, 군더더기 없는 건축 구조는 단단하면서도 깔끔한 현대적 감각을 드러내게끔 설계됐다. 짙은 회색 계열의 벽체와 대비되는 지붕면의 밝은 석재는 날아오르는 듯 가벼운 느낌이다. 이 소장은 "절경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선이 닿는 요소들을 한국적 선으로 표현했다"며 "건물 구조는 안팎으로 반듯하고 간결한데 입면을 살짝 비틀어 한옥의 기와 처마를 닮은 곡면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한옥의 모티브와 간결한 현대적 디자인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집은 고즈넉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풍긴다. 집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처마 곡선 외에도 곳곳에 한국식 미감이 흘러 넘친다. 마당을 향해 살짝 고개를 내민 1층 나무 마루와 유리 난간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한 2층 테라스는 한옥 툇마루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만하다. 스테인리스 원형 파이프로 채운 처마 구조물은 한옥의 서까래를 빼닮았지만 그 자체로 간결하고 모던한 조형미를 풍긴다. 조경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정원 역시 한국식 정취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원래 있던 바위 덩어리는 그대로 두고 수목은 산과 연결하듯 구성해 자연미를 한껏 살린 앞마당은 보는 이의 감탄을 부른다.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 때 자연 재료와 조영물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스스로 열리게 만드는 한국식 미학이죠."

태양의 고도에 맞춰 설계한 집

건축주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의 벽면은 밝은 색상 석재로 마감해 아늑한 느낌을 연출했다. 거실과 부엌의 앉은 자리에서는 창 너머로 정원과 관악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여유 있게 구성해 안정감을 주고, 난간은 건물의 주재료로 쓰인 원형 스테일리스를 사용해 통일감을 부여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선유재의 디자인에는 외적 미학 외에도 패시브하우스 기준을 총족시키는 내실도 담겼다. 패시브하우스는 단열공법으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을 의미한다. 집의 상징인 처마는 실은 계절에 따른 고도 변화를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 소장은 "낮이 가장 짧은 동지의 태양 남중고도는 28도, 하지의 남중고도는 76도에 이를 만큼 고도 차이가 크다"며 "이 땅을 기준으로 태양 고도 변화를 정확히 계산해 설계에 반영하면 계절마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틀린 입면으로 생긴 1층 처마는 아내의 공간인 주방에, 외부를 향해 노출된 도로면 처마는 남편이 주로 머무르는 서재에 각각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빛을 걸러낸다. 반면 겨울철엔 낮은 태양 고도로 방 안까지 볕이 들어온다. 건축주는 "살아보니 무더운 여름에는 빛이 일부만 들어와 서늘하고, 겨울에는 깊숙한 곳까지 빛이 들어와 온기가 돈다"며 "이 집에 살면서 주택이 아파트보다 쾌적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천장에 낸 창으로 사시사철 빛이 들어와 내부가 밝고 따뜻하며 시원스럽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드러나지 않은 면에서도 세세한 수고를 들였다. 지붕 단열에는 두께 220㎜의 단열재를 쓰고 천창을 포함한 집 전체 창호에는 47㎜ 두께의 트리플 로이코팅 유리를 사용해 열 손실을 최소화했다. 패시브하우스 건축에 필수적으로 적용하는 최신 회수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 바깥 공기의 유입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소장은 "집은 미학적 요소뿐 아니라 과학적 설계로 사람이 살기 편한 요소를 두루 갖춰야 한다는 게 오랜 철학"이라며 "에너지와 환경 이슈가 점점 중요해지는 만큼 패시브 설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효과는 실생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건축주는 "여름철 습기와 겨울철 냉기를 차단하는 것만으로 집을 사시사철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며 "100평 단독주택을 유지하는 전기료가 전에 살던 30평대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2층 테라스는 유리 난간을 만들어 집과 맞닿은 산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풍류와 인연이 이어지는 주택살이

한옥의 서까래를 연상케 하는 간결한 스테인리스 구조물에는 조명을 설치해 시각적인 재미 외에 기능을 살렸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열 효율을 극대화하는 패시브 주택이라고 하지만 창은 오히려 과감할 정도로 넓다. 주위 풍경을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1층 거실과 주방에 전면 창을 바닥에서부터 천장 높이까지 설치하고 2층의 독립 공간에도 하나같이 큰 창을 냈다. 특히 서재에는 전면과 측면이 연결되는 창을 만들어 주변 경치를 파노라마 뷰로 볼 수 있다. 계단에서도 천장으로 난 창의 빛을 여과 없이 즐길 수 있다. 전면 창과 테라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분에 주변의 풍경과 내외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얽혀 집의 어느 곳에 있어도 변화무쌍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건축가는 이를 한국형 패시브 주택이라고 칭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 못지않게 도심 아파트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주택 살이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관악산의 수려한 풍경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운 일상, 맑은 공기를 담은 집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예측이라도 한 듯, 건축주 부부에게 최고의 선물이 됐다. "매일 집 이곳저곳에서 주택 살이를 만끽하고 있다"는 부부에게 집을 짓고 나서 소소한 재미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절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디자인이 입소문을 타면서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 섭외가 잇따르기 때문. 배우 윤여정씨가 은퇴한 건축가 여정 역으로 출연한 영화 '도그 데이즈'도 최근 선유재에서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선유재는 극중에서 윤씨가 반려견 완다와 단둘이 사는 주택으로 나온다. 올가을께 선유재가 또 한 편의 영화와 인연을 맺을 것 같다는 건축주의 말에서 '선이 놀고 흐르는 집'이라는 집 이름이 다시금 떠올랐다.

터를 닦을 때 나온 바위는 그대로 무심히 놓였고 주변 수목을 최대한 끌여들인 조경으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집의 동쪽으로 들린 처마에서 맞은편 청계산의 능선이 연결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과천=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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