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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차 건설사 직원의 쓴소리 "지하철역 설계부터 교통약자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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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차 건설사 직원의 쓴소리 "지하철역 설계부터 교통약자 배려해야"

입력
2022.08.11 15:00
수정
2022.08.11 16:3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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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환승 거리 분석해 논문 쓴 정예원씨
"非장애인 중심인 시설 기준에 아쉬움 느껴"
환승 체험 위해 서울역에서 3시간 헤매기도
"장애인 교통편의, 설계 단계부터 고려해야"

정예원씨가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열악한 이동권 현실을 조명한 논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정예원씨가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열악한 이동권 현실을 조명한 논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지하철을 갈아타려면 비(非)장애인보다 얼마나 더 이동해야 할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서울 지하철 44개 역 58개 환승로를 대상으로 환승 거리를 계산해 비교한 논문이 나왔다. ‘교통약자 측면의 도시철도 환승역 환승보행 서비스 수준 평가방법 연구’란 논문을 쓴 주인공은 13년 차 대형 건설사 직원 정예원(39)씨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가 교통약자의 이동권 차별을 실증적으로 조명한 논문을 쓴 건 직업적 관심에서 비롯했다.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정씨는 “민간투자 사업 입찰에 필요한 설계 제안서를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교통약자를 배려한 조항이나 기준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다.

정씨의 논문은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가 2018년 서울 지하철 53개 역을 점검해 만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무의 지도에 표시된 환승 시간에 장애인의 수평보행속도 0.78㎧를 곱해 거리를 계산했다. 여기에 각 역의 휠체어 리프트와 엘리베이터, 개찰구 등의 시설까지 반영했다. 논문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환승 거리는 평균 150m인 반면 장애인의 환승 거리는 725m로 약 4.8배 긴 것으로 나타났다. 건대입구역(2ㆍ7호선)은 비장애인(77m)과 장애인(1,404m) 환승 거리 차이가 무려 18배나 났다.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통관리학과 정예원(왼쪽)씨가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에게 교통약자 이동권을 분석한 논문을 건넨 뒤 활짝 웃고 있다. 무의 제공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통관리학과 정예원(왼쪽)씨가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에게 교통약자 이동권을 분석한 논문을 건넨 뒤 활짝 웃고 있다. 무의 제공

정씨의 논문에는 홍윤희 무의 이사장이 “감격스럽다”고 감탄할 정도로 세밀하고 꼼꼼한 자료가 가득하다. 알고 보니 ‘주경야독’의 산물이었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비대면으로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통관리학과 수업을 들어가며 논문 작성에 매진했다.

그가 처음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1년 전 싱가포르 파견 경험이다. 2011년부터 5년간 싱가포르 지하철 환승역 공사 관리ㆍ감독을 맡았는데, 교통약자를 배려한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씨는 “싱가포르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기술 좋은 회사를 선별해 최대한 교통약자 편에서 설계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올해 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의 시위를 보면서 논문 작성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왜 이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시위를 하게 됐을까 고민해 보니 답이 나왔어요. 기본 계획을 잘 세웠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정씨는 5월엔 아홉 살 딸과 함께 직접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가봤다. 불분명한 안내판과 고장난 채 방치된 리프트 탓에 땡볕에서 2, 3시간을 헤매야 했다. 그는 “서울의 상징적 역사도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싶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예원씨는 5월 6일 어린이날 연휴에 아홉 살 딸과 서울역을 찾아 휠체어를 타고 환승 체험도 했다. 정씨 제공

정예원씨는 5월 6일 어린이날 연휴에 아홉 살 딸과 서울역을 찾아 휠체어를 타고 환승 체험도 했다. 정씨 제공

정씨는 앞으로 공사 예정인 경전철이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설계를 할 때 장애인 환승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GTX-B 노선 입찰에 ‘국민 편의성’ 항목으로 환승 서비스 수준(LOS)을 반영했지만, 여전히 비장애인 기준이다.

“장애인 기준으로 설계 평가 항목이 만들어지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더 들어도 맞추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교통약자 편의가 실제 사업에 반영될 수 있록 체계적 기준이 나와야 합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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