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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윤 대통령' 실명 비난한 속내

입력
2022.08.09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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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대남 성명이나 보도를 분석할 때 언론들이 유독 주목하는 지점 중의 하나가 '실명 비난'이다. 북한의 당정군은 물론 각급 기관과 외곽단체에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대남 비난 성명, 발표, 논평, 기자 문답 등에서 한국 대통령의 실명이 언급되는 순간 기사의 주목도는 높아지고 비중도 커진다.

지난 7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 연설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지금 같은 작태를 이어간다면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8,500자에 이르는 장문의 연설 중 윤석열 대통령의 실명은 세 군데에 등장한다.

언론들이 실명 비난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한이 남한 정부를 비난할 때 선택하는 표현들 중에도 '급'이 있고 '격'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박종희 교수팀이 1946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신년사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해당 기간 신년사에서 남한을 지칭하는 표현은 무려 33개였다. 괴뢰통치배, 군사파쇼, 남조선호전광, 주구와 같은 부정적 단어들이 대다수였다. 남조선 당국이나 남조선 집권세력 정도를 사용한 것은 그나마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였다.

외무성이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물론 각종 정치사회단체의 대남 비난 성명에서 한국 대통령의 실명 거론은 이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여간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대남 비난 내용을 분석해 보니 청와대를 직접 지칭했던 152건의 보도 중 박 전 대통령의 실명을 직접 거론한 것이 95건, 절반을 넘는 수치였다. 한국에서 보수 성향 정부가 집권할수록 실명 비난의 빈도는 늘어나고 내용은 더욱 험악해졌다.

한국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남 비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경협의 중요성을 언급하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기상천외한 표현의 담화를 내놓았다. 조평통 대변인을 통해서였다. 이듬해에는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에 평양 옥류관 주방장을 내세워 "국수를 처먹을 때는 요사를 떨더니 돌아가서는 한 일도 없다"는 막말 기고문이 실렸다. 두 개의 담화와 기고문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나 우리 측 당국자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실명 비난은 무조건 강도 높은 비난으로 해석되고,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의 수위가 낮은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김정은이 직접 실명 비난의 포문을 열었으니 한미연합 군사연습이 시작되고 윤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잦아지면 각급 단체의 실명 비난은 경쟁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김정은의 전승절 연설에서는 '윤석열과 군사깡패' 수준을 언급했다면 8월 내내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수록 외곽단체들을 내세워 저열한 인신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북한이 대남 비난에 한국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는 것은 남남갈등을 노리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반인륜적 언사를 동원한 비난을 퍼붓자 페이스북에 "상대방의 국가원수를 막말로 모욕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고 쓰기도 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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