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압수수색 요건 강화 기조>
수사에 디지털 포렌식 활용 급증
"개인 기본권 침해 우려" 공감대
최근 "클라우드 수색 위법" 판단도
절차 엄격 땐 중대범죄 놓칠 수도
"디지털 증거수집법 새로 마련을"
법원이 최근 수사기관이 확보한 디지털 증거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꼼꼼히 따지면서 수사기관의 불만이 점차 커지고 있다. 증거 수집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압수수색 등 수사의 어려움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의 실체적 진실 규명 못지않게 개인정보 보호와 피의자 방어권 보장 역시 중요하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선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법원의 보다 깐깐해진 디지털 증거의 판단 기준은 올해 들어 나온 세 건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불특정 다수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강사휴게실 PC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올해 1월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상고심 재판이다. PC 안 전자정보가 정 교수의 것인지, 소속된 기관(동양대)의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사안인데 대법원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공용 사용 전자기기 내 정보의 피압수자는 공용 기기가 소속된 기관 또는 법인'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6월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이메일 등 제3자가 보관하는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정보소유자(피압수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 대해 '계정 소유자'라는 답을 내놓았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만으로는 인터넷 내 저장소인 클라우드 계정 내 정보를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판결도 같은 달 대법원에서 내려졌다.
디지털 수사기법 활성화에 법원 "기본권 침해 막아야" 목소리
법조계는 이들 세 사건을 "디지털 압수수색 적법절차 요건을 구체화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압수수색을 위한 디지털 정보의 주체와 범위에 대한 계속된 논란에 대법원이 판단 기준을 판결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디지털 압수수색의 절차를 보다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 법원 내부에서 퍼져 가는 분위기"라며 "게다가 압수수색과 포렌식이 점차 늘어나면서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수사기관에 너무 쉽게 노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또 다른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대법원 근무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대법원 내에서 범죄 증거 확보만을 이유로 절차 등을 조금은 간과해 왔던 수사기관의 관행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디지털포렌식 증거분석 건수는 2009년 검찰 1,252건, 경찰 5,493건에서 10년 만인 2019년 검찰 9,021건, 경찰 5만6,440건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검찰 "범죄자 증거인멸 용이해져"…학계 "수사절차법·증거법 입법 추진해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디지털 압수수색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정경유착이나 기업범죄, 사이버범죄 등 중대범죄를 해결해 나가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며 반발한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범죄자가 증거를 은멸하기 용이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경우 범죄 규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그동안 디지털 압수수색 과정에서 범죄와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사기관에 제공된 측면이 있는데,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 기본권 보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적법절차와 피의자 인권 보장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법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증거수집에 대한 법 체계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며 "미국처럼 수사절차법이나 증거법을 따로 만들어서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역시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적절한 디지털 압수수색 절차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