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점서 손님·종업원 '마약 탄 술' 먹고 사망
유족 측 "동석자들도 공동정범으로 수사해야"
사망한 종업원이 남긴 메시지·녹음 파일 근거
"죽기 직전 위험 증언…사건 무마돼선 안 된다"
지난달 5일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손님이 건넨 술을 마시고 숨진 여성 종업원 A씨의 유족 측 변호인이 “사건 당시 방에 있었던 동석자들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족 변호를 맡고 있는 ‘부유법률사무소’ 부지석ㆍ송제경 변호사는 전날 서울 강남경찰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10쪽 분량의 의견서를 냈다. 변호인은 동석한 손님 여러 명이 짜고 필로폰을 술에 몰래 타 A씨에게 마시게 했다고 보고 있다. 사건 당일 피해자와 주점에 함께 있었던 다른 여성 종업원도 얼마 전 비슷한 증언을 했었다. 변호인들은 이를 입증할 만한 또 다른 근거 자료를 찾아 의견서에 포함시켰다. 바로 A씨 휴대폰에 남아 있던 ‘카카오톡 메시지’다.
술게임·마약 위협 느낀 종업원, 현장 녹음까지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그날 방 안에서는 오전 5~7시 A씨를 포함한 여성 종업원 2명과 손님 4명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난 뒤 손님 B씨는 오전 8시 30분쯤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집으로 귀가한 A씨는 같은 날 오전 10시 20분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인은 ‘메트암페타민(필로폰) 중독’이었다.
한 달 동안 수사한 경찰은 B씨에게 마약을 판매한 유통책 및 공급책 4명을 붙잡아 이날 검찰에 넘겼다. 필로폰과 대마, 엑스터시 추정 물질과 주사기 수백 개도 압수했다. 마약 유통 경로는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다. 단, 애초에 A씨 술에 마약을 탄 사람은 누구인지, 동석자들은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는지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망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만한 흔적을 A씨가 남긴 것이다. 술자리가 끝나 갈 무렵인 오전 6시 45분쯤 A씨는 주점 담당 직원에게 “오빠” “여기 방” “에베크 언니들도 다 알고 있었네요” “저 죽이려는 거”라고 보냈다. 에베크(아베크)는 남녀 손님이 함께 들어온 방을 뜻하는 업계 은어다. 실제 이날 손님 4명 중 남성이 3명, 여성이 1명이었다. ‘언니들’은 여성 손님과 방에 있던 다른 여성 종업원을 함께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송 변호사는 “여성 종업원은 범행 가담을 부인하고 있어 일단 의견서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술자리 상황도 녹음했다. 변호인 측은 이 역시 A씨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한 행동으로 판단하고 있다. 녹음파일을 풀어 정리한 일부 녹취록도 의견서에 담겼다.
경찰 "피의자 전환 참고인 아직 없어"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B씨 외에 나머지 손님과 여성 종업원은 마약 검사에서 모두 최종 ‘음성’ 판정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도 “A씨의 사망 경위는 아직 수사 중”이라면서도 “현재까지 피의자로 전환된 참고인은 없다”고 했다. 경찰이 동석자들에게는 혐의를 두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부 변호사는 “사망자가 죽기 직전 위험을 증언한 만큼, 살인으로 보고 다시 조사해야 한다”면서 “유력한 가해자가 죽었다고 해서 사건이 묻혀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혐의 입증이 쉽지는 않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술게임을 유도한 상황과 왜 죽이려고 했는지, 의도를 명확히 드러낼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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