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영국에선 동성끼리 결혼할 수 있냐'고 물었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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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영국에선 동성끼리 결혼할 수 있냐'고 물었다"[인터뷰]

입력
2022.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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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 인터뷰]
북한 주재 영국대사 거친 '한반도통'
서울퀴어문화축제 연설로 '스타' 등극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콜린 크룩스 대사가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와의 인터뷰 중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북한 운전면허도 땄어요. 북한 차를 몰고 서해안 남포에서 동해안 원산까지 자유롭게 다녔죠. 사전 허가를 받고 안내원과 함께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허가 신청이 거부된 적은 거의 없어요.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의 말이다. 크룩스 대사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북한 주재 영국대사를 지냈다. 평양에 살면서 북한의 거의 모든 도(道) 단위 행정구역과 대도시를 방문했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을 통해 꽁꽁 숨겨져 있던 북한 곳곳의 모습이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되기도 했다.

크룩스 대사는 올해 2월 한국에 부임하면서 '영국 최초 남북한 대사 연속 역임'이라는 기록을 썼다. 그는 한국말과 북한말이 모두 유창한 '한반도통'이다.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근무했고, 배우자가 한국인이다. 2008년엔 북한 주재 대사대리도 지냈다.

직업 외교관인 크룩스 대사는 왜 한반도에 끌린 걸까.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정치적 갈등으로 분열된 곳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크룩스 대사는 북아일랜드 태생으로, 가톨릭 구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인한 유혈사태를 목격하며 평화와 외교의 중요성을 몸소 느꼈다는 것이다.

"'리태원 안다!'는 북한 주민들과의 대화 기억에 남아"

지난 2019년 5월 콜린 크룩스 당시 북한 주재 영국대사가 함경남도 함흥의 한 도로에서 찍은 북한 아이들의 모습. 크룩스 대사 트위터

북한 주민들은 크룩스 대사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걸곤 했다. "하루는 평양역 뒤편에서 노래방 기계까지 동원된 노래판이 벌어졌습니다. 아리랑을 따라 불렀더니 한 노인이 '조선말은 어디서 배웠냐'고 묻더군요. '서울 용산에서 배웠다'고 하니까 '미군들 사는 리(이)태원, 나도 안다!'고 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죠. 그런데 그분 딸이 '빨리 집에 가자'며 아버지를 끌고 가더군요(웃음)."

북한 주민들은 '북한 바깥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서양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하냐', '영국에선 남자끼리 결혼할 수 있다는데, 사실이냐', '(동성이) 서로 좋아하면 (결혼하지 말고) 그냥 친구로 지내면 안 되냐' 같은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한국'은 여전히 금기인 듯, 크룩스 대사에게 남한 사정을 물은 주민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크룩스 대사가 느낀 북한의 지역별 생활 수준 격차는 엄청나게 컸다. 평양에 조성된 신도시 '여명거리'는 화려했고, '과학기술 거리'도 들어섰다. 중국 베이징 못지 않게 택시도 많았다. 하지만 평양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2008년과 2018년 사이에 거의 달라진 게 없었어요. 농촌에선 아직도 소달구지를 타고, 겨울엔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 한 마을에 겨우 한 곳일 정도였죠.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한 2020년 1월 이후엔 평양 상점에서도 상품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어요. 바나나, 레몬, 오렌지 같은 사치품이 먼저 사라졌죠."

크룩스 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가까이서 대면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19년 한 행사에서 연단에 앉아 있는 김 위원장을 멀리서 본 게 전부다. 대사 신임장도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받았다. 크룩스 대사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질문엔 일절 답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에 있는 동안 늘 존중받고 대접받았다"고 했다.


지난 2019년 10월 콜린 크룩스 당시 북한 주재 영국대사(중간)가 평양과학기술대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크룩스 대사 트위터


"소수자 보호는 기본 인권 문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지난달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크룩스 대사는 한국어로 "혐오는 없어져야 합니다"라고 외치며 강력한 연대 의사를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크룩스 대사는 지난달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스타'였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의 영국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혐오는 없어져야 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외친 그에게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왜 연설을 했나고요? 성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소수자를 보호하는 건 기본적 인권 문제이니까요. 반대 시위 소리가 크길래 제가 더 크게 외쳐 봤죠(웃음)."

크룩스 대사는 한국의 성차별 실태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하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성평등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동시에 경제적인 이득을 창출하기도 하죠. OECD 통계에 따르면, 성별 임금 격차가 사라지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2%나 올라가요."

여성가족부 폐지 논쟁을 두고 크룩스 대사는 "한국만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성평등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영국엔 '여성부'와 '평등부'로 구성된 '정부평등청(GEO)'이 있습니다. 나이, 인종, 성별 등에 따른 모든 차별 문제를 담당하죠.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를 정부가 보장해야 합니다."

"한국-영국 '당연한 동반자' 관계 만들겠다"

주한 영국대사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한국과 영국의 당연한 동반자 관계 맺기'입니다. 무역, 사이버 안보, 기후 등 어떤 분야에서든 영국은 아시아에서 협력할 국가로 한국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한국은 유럽에서 협력국을 찾을 때 영국부터 생각났으면 해요. 제가 근무하는 3년 동안 양국 관계를 꼭 그렇게 만들도록 노력할 겁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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