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소통 없는 정책, 학생들만 피해" 쓴소리
유치원 학부모 "만 5세 입학, 아이도 불쌍하다더라"
장상윤 차관 "폐기 확정 아냐… 연말까지 사회적 논의"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안에 대한 의견수렴과 공론화 작업에 뒤늦게 착수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을 산 '학제 개편안' 대신 '국가교육 책임제 강화'를 의제로 내걸었으나 '졸속 추진'이라는 현장의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 시도교육감과 영상 간담회를 열어 학제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간담회는 당초 '코로나19 관련 2학기 정상등교 추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학제 개편안도 안건에 포함시켰다.
박 부총리는 회의에서 "업무보고 시 발표했던 취학연령 하향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우려가 많다"며 "다만 이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였다"고 재차 해명했다. 이어 "앞으로 교육감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결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감들은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조희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서울시교육감)은 "소통의 중요성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운을 뗀 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과 논의하지 않은 채 무심코 발표하는 정책은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져다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학생들이 받는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학부모들의 우려를 깊이 공감한다"며 "취학연령 하향 조정에 앞서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과정 통합)과 여러 부처에 흩어진 돌봄 체계의 정리, 초등 저학년 방과 후 돌봄 제도 마련, 만 5세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임 교육감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취학연령 하향 조정 논의를 시작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성명을 통해 "유아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무리한 학제 개편에 반대한다"며 "유아교육에 대한 공교육 책무를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밝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치원 학부모 9명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전날 급하게 잡힌 일정인데, 참석 학부모들은 "급하게 전화를 받고 참석했는데, 장소도 바뀌고 언론 공개 여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의견수렴조차 졸속"이라고 성토했다.
학부모 곽유리씨는 "정부의 무성의하고 경솔한 발상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화가 났다"며 "교사, 학부모, 학생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반대한 정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제 자체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학연령을 낮출 게 아니라 유아교육을 강화하고, 돌봄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학부모 김성실씨는 "아이에게 7살에 입학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니 '그건 너무 불쌍하다'고 답하더라"며 "이게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양질의 유아교육이 선행되고, 그에 맞는 초등학교 교육을 하는 게 훌륭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장 차관은 "9월부터 대국민 수요조사를 시작해 연말까지 전문가 토론회, 국회 협의,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논의를 거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대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전날 박 부총리가 "국민이 반대하면 정책이 폐기될 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사흘째 반대 집회를 열었다. 범국민연대는 만 5세 취학 철회 촉구 서명운동에 20만 명 넘게 참여했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부터 전국 교직원·학생·학부모 13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7.9%가 초등학교 입학 연력을 낮추는 학제 개편안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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