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한전 하청업체서 배전 전기원 근무
고압 전류 흐르는 특고압 자기장에 노출
돌연 갑상선암 발병... 공단 "인과성 없어"
법원 "업무와 암 발병 인과관계 상당하다"
20여 년간 특고압(7,000볼트 이상) 자기장에 노출돼 갑상선암이 발병한 배전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혜정 판사는 지난달 20일 배전 전기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199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전력의 한 하청업체에서 배전 전기원으로 근무하며 '직접 활선 작업'을 도맡았다. 직접 활선 작업은 2만2,000볼트에 달하는 특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력선을 건드려가며 전신주와 송·배선로 등을 관리하는 일을 뜻한다. 이 작업 방식은 지난해 11월 경기 여주에서 벌어진 배전 전기원의 감전사 사고 이후로 전면 금지됐다.
A씨는 1998년쯤부터 전선에서 방출되는 극저주파 자기장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활선 작업 방식이 효율성 제고 등을 이유로 '정전 후 작업'에서 '무정전 작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4mG의 극저주파 자기장을 발암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업무 강도도 셌다. A씨는 하루에 전봇대 20~30개의 기자재와 7~8개 전봇대의 전선을 혼자 교체해야 했다. 전신주가 쓰러지거나 여름철 전력수요 증가로 변압기가 고장난 것도 그가 처리할 몫이었다.
A씨 몸은 결국 탈이 났다. 근무 20년째인 2015년 갑상선암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기저질환이 없었는데 갑상선암에 걸린 건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 때문"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극저주파 자기장과 갑상선암 발병 간에 인과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거절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손 판사는 "현 수준에서 규명이 곤란하다고 해서 인과성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며 "극저주파 자기장이 다른 요인과 함께 갑상선암을 발병하게 했거나, 질병을 빠르게 악화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와 질병의 인과성도 인정했다. 손 판사는 "A씨는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치명적인 감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왔다"며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갑상선암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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