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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가 사라지면 서글픈 건 시민이다

입력
2022.08.0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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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면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을지면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서울 냉면 노포 을지면옥이 문을 닫게 되어 뉴스에 나왔다. 재개발로 가게가 헐리게 된 까닭이다. 길게 줄을 선 마지막 손님들이 기자들과 아쉬운 인터뷰를 했다. 을지면옥의 명성 때문인지, 아니면 노포 바람을 탄 것인지 이렇게 오래된 가게가 없어진다고 해서 뉴스를 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을지면옥은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받기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가게를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재개발 바람에 밀려 결국 패소했고, 가게를 비워야 했다. 기사에 달린 몇몇 댓글 중에는 '보상을 바라고 버티기 하는 건 무리'라거나, '다른 동네로 옮겨 장사하면 될 텐데 저렇게 아쉬워하는 게 이해 안 된다'는 글도 있었다.

도시는 늘 재생한다. 지금 서울은 옛 서울이 아니다. 전쟁 등으로 불가피하게 재생했던 1950년대를 거쳐서 급히 만들어진 게 서울 도심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쌓여 그것도 도시와 시민의 역사가 되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왕 이렇게 된 서울을 지킬 건 지키고 허물자면 좀 생각해 보고 천천히 하자, 이게 맞는 말이다.

세계의 오래된 도시는 불편함을 참아서 명성과 시민의 기억을 지켜왔고, 그것이 심지어 돈이 되었다. 버티고 부수지 않았던 오래된 도시의 경관이 든든한 돈벌이의 밑천이 되었다는 뜻이다. 보상을 바라고 버티기라는 댓글에 개인적 소견을 달자면, 자신의 오랜 가게가 헐린다는 데 더 나은 보상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재개발자의 권리를 보장하듯, 반대할 권리와 보상받을 권리도 보장한다. 그래서 최종심까지 싸웠던 게 을지면옥이고 이는 무슨 공공의 불편을 불러온 것도 아니었으니 정당한 일이다. 다른 곳에 옮겨 장사하면 될 일인데 고집부린다는 의견에도 나는 섭섭하다. 가게란 그냥 탁자 놓고 재료 있으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도시의 기억은 누대로 내려가는데, 그 상당수가 일개 개인의 영업장소인 가게를 통해 전수된다. 쉽게 말해서 개인 재산인 노포도 도시 공공 자산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서울 을지면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을지면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에 생겼다. 300년을 버티고 있다. 누구도 개인 재산이니 뜯어내고 공원 짓자고 하지 않는다. 개인 장사지만 손님 불러들여 장사하고 세금 내고, 시의 명소가 된 건 모두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옮겨 장사하는 카페 플로리안이었다면 이미 기억의 장소성을 잃어버려 의미가 퇴색한다.

을지면옥은 입구에 파란색으로 쓴 소박한 페인트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소박함조차 사실 도시 자산이다. 거기다 지금은 일부러 지으려야 지을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입구 복도를 지나 바로 가게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공공의 작은 길로 흐름이 단절되고, 그걸 건너야 가게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엉성한 옛 도시 설계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시민들은 사랑했다. 멋지고 잘생기거나 몇 백 년 몇 천 년 된 문화재만 도시 자산은 아니다. 도시인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공간에 시간이 축적되면 그것 또한 소중하다. 옛 피맛골 해장국집 청진옥과 빈대떡집 열차집, 막걸리주점 와사 등의 허름한 판자 붙인 건물이 지금도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공감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걸 포기했고 대신 사각형의 멋없는 대형 건물을 얻었다. 도대체 시민이 받은 이익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물어보자. 외국여행 가서 오래된 골목길, 식당과 카페에 감탄하면서 우리 도시는 왜 그런 걸 가지면 안 되는지 물어보자.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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