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경찰대 불공정' 발언 이후 관가 술렁
"3급, 4급 입직하는 판사, 검사가 더 불공정"
초임 검사도 해외출장 땐 '국장급'으로 변신
"과한 대우와 직급부여는 '선민의식' 심어줘"
"경찰대 출신만 졸업 후 경위로 임용하는 건 불공정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 한마디가 공직사회 내 ‘직급 인플레이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 장관은 졸업 후 별도 시험 없이 7급 상당 경위로 임용되는 경찰대 출신을 불공정으로 낙인찍었지만, 불똥은 딴 데로 튀었다. 일반직 공무원들은 정작 높은 대우와 직급으로 출발하는 판·검사들을 향해 훨씬 많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무원 조직에 '불공정' 풍선을 쏘아올린 이 장관도 판사 출신이다.
이상민이 점화한 공직사회 불평등
지난달 26일 이 장관의 불공정 발언 후 관가에 회자되는 얘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3·4급으로 입직하는 법관과 검사 등 법조 공무원이 더 불공정하다.”
지난해 기준 5급 공무원이 4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9년 3개월(직전 계급 재직 연수), 4급에서 3급은 10년 4개월이 걸린다. 법조 공무원이 많게는 20년 앞서 공직을 시작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실장급(1급) 보직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A씨는 2일 “70년 전에는 사법분야를 키우기 위해 막대한 유인책을 앞세워 엘리트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면서도 “그사이 많은 성장을 했고, 시대 변화를 감안하면 법조인의 직급 인플레 문제를 되짚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행정·외무고시(5급 임용)와 같은 고시인데도 사법시험 출신만 유독 3·4급으로 임용된 데 대한 공직사회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으로 법조 공무원 임용 방식이 달라지긴 했어도 115만 공무원 사회에서 사법분야는 여전히 ‘성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직급 규정 없는 초임 판·검사... "처우는 3·4급"
사실 공무원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인사혁신처와 공무원 봉급 관련 규정엔 판·검사를 3급 또는 4급으로 임용한다는 내용이 없다. 인사처 관계자는 "검사의 경우 부장검사, 지검장 등 직책만 있을 뿐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법관은 대법원장, 대법관, 일반법관 3직급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숫자로 된 법조 공무원의 임용 직급은 어디서 나왔을까. 답은 공무원의 봉급업무 처리기준(호봉획정을 위한 공무원 경력의 상당계급 기준표)에 있다. 다양한 직군의 직급(계급)을 한 데 모아 표시한 대조표인데, 판·검사 봉급은 일반직 공무원 ‘4급 2~4호봉’에서 시작한다. 올해 일반직 공무원 봉급은 5급 1호봉이 260만6,400원, 4급 2호봉은 303만5,700원이다. 그러나 법관 보수에 관한 규칙을 보면, 올해 법관 1호봉은 329만3,800원으로, 일반직 4급 4호봉(328만600원)과 비슷하다. 법관이 일반 공무원보다 68만7,400원(26%) 더 많은 월급을 받고 공직에 입문하는 셈이다.
여기에 일반직 공무원은 급여에 명절휴가비, 정근수당 등이 일부 포함되는 ‘연봉제’가 적용되는 데 반해, 판·검사는 ‘호봉제’로 급여를 수령한다. 호봉제에서는 각종 수당이 따로 지급돼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인사처 관계자는 “호봉제가 연봉제에 비해 급여가 완만하게 오르지만 검사의 초기 처우가 높은 편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검찰도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이유로 별도 규정을 통해 법관과 같은 호봉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말단 검사도 출장 땐 '국장급' 변신
급여만이 아니다. ‘출장 여비’ 특혜도 있다. 인사처 공무원 여비 규정 등에 따르면 국외여행 항공기 운임은 검찰총장에게 일등석(퍼스트클래스), 나머지 검사(1~17호봉)에게는 비즈니스석이 제공된다. 일반직 공무원 중 비즈니스석에 앉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중앙부처 국장(2급) 이상이다. 초임 검사들도 2급 대우를 받는 것이다. 5급 공무원이 2급까지 승진하려면 22년 6개월이 소요된다.
반론이 있긴 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여비를 지급하되 비즈니스석 관련은 출장 대상자와 출장지, 횟수 등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제 이용 여부와 별개로 초임 검사가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자체가 일반 공무원에게 박탈감을 줄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검사 보수에 관한 법률 폐지안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행정부 소속인데도 직급 인플레를 유발하는 검사 보수 규정을 일원화하자는 주장이다.
"판·검사 특혜 필요" VS "선민의식만 고취"
물론 부족한 법관 수나 업무 독립성을 고려해 판·검사들이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지금도 법관이 태부족인데, 처우마저 일반직 공무원에 맞추면 사법 공백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법관이 아닌 변호사 길을 택했을 때의 보수 수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급여 등을 반영해 이 정도 대우는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사들도 “법관을 상대로 일하는 만큼 사법부에 준하는 처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행정 전문가들은 “금전적 요인이 반드시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 행정학과 교수는 “검사는 업무 특수성이 있고, 직업 자체로 인정받는 조직”이라며 “5급 공무원과 동일한 직급으로 임용한다고 해서 로스쿨 졸업자들이 지원을 꺼릴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외려 법조 공무원에 대한 특별 대우는 ‘선민의식’만 고취시켜 부작용을 낳을 확률이 높다는 비판이 더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정직 공무원에게 걸맞은 존중은 필요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우월감만 심어줄 것”이라고 꼬집었다.
A씨는 “혜택을 받은 판·검사들이 노력해 국가 발전에 공헌한 것은 맞지만 달라진 시대에 일반 공무원들의 박탈감을 더 방치해선 안 된다”며 “특히 새 정부가 공정을 화두로 내건 만큼, 공직사회의 균열을 봉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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