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손님이 배달이 너무 늦어 취소하겠다고 했단다. 세 집 배달을 마치고 마지막 집 배달을 가는 중이었다. 배달통에 실린 건 약 1만 5,000원짜리 떡볶이였다. 음식점 계좌로 1만5,000원을 송금하고 마음 편히 식은 떡볶이와 튀김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2년 전 처음으로 음식 값을 물어준 사건이었다.
시간이 흘러 배달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음식 값을 물리는 일은 조금씩 줄었다. 2021년 공정위도 3개 플랫폼사의 불공정 약관에 대해 시정을 명했고, 동네 배달대행사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러나 최근 요기요가 매장의 포장 불량 때문에 커피가 새거나 음식 국물이 흐른 것까지 배달료에서 차감한다는 상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분쟁이 계속되자 요기요는 앱 공지를 통해 포장상태를 체크하고 재포장을 요청하는 것까지 라이더 책임이라고 안내했다. 빠른 배달을 원하는 사장님 앞에서 라이더가 음식이 든 봉지를 풀어 용기 하나하나 랩 포장이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한다고 상상해보라. 심지어 라이더가 포장이 잘못됐으니 다시 포장하라고 요청하면 싸움 나기 딱 좋다. 음식 값을 차감하더라도 정도가 있다.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접수되자마자 라이더에게 알리고, 라이더가 음식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상식이다. 라이더가 파손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회수한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는 방식으로 차감된 배달료를 벌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기요는 하루, 심지어 이틀이 지난 후에 음식 값 차감을 통보했다.
음식 값 문제는 노동자 신분에 따라 배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어떻게 전가되는지를 보여준다. 맥도날드에서 근로자 신분으로 일할 당시 A집 햄버거와 B집 햄버거를 뒤바꿔 배달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업계에서는 '크로스 오배송'이라 부른다. 이때 회사는 음식 값을 임금에서 차감하지 않는다. 매니저의 매서운 눈빛을 감수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근로자 실수를 책임진다. 햄버거 주문, 제조과정에서도 실수가 나올 수 있다. 회사에서는 이런 실수를 상수로 생각해 미리 비용으로 계산해 놓는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일부러 오배송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회사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히 일한다. 실제 맥도날드에서 일할 땐 제로 콜라인지 디카페인인지, 아이스크림이 녹았는지까지 확인하고 배달했다. 회사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고용하고 위험을 책임지는 이유다.
반면, 배달대행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포장된 음식을 배달하는 업무만 뚝 떼어내 외주화한 사업이다. 배달대행 노동자도 배달 외에는 책임감을 갖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배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가 불분명해진다. 규칙이 없는 곳엔 힘의 논리만 남는다. 배달대행사가 배달료에서 음식 값을 먼저 차감하면, 노동자들은 2만 원 정도의 음식 값을 돌려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걸어 자기 책임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음식 값을 송금하기 전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플랫폼사가 앱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 무조건 라이더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 납득할 만한 과정 없이 노동자에게만 전가되면, 노동자들은 기업에 대한 애정을 잃고 떠나게 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조각낸 노동이 기업을 조각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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