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의 열쇠는 ‘마침내’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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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열쇠는 ‘마침내’ 나입니다

입력
2022.08.01 04:30
수정
2022.08.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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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마지막회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신동준기자

‘오은영의 화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 9월 19일부터 오늘까지 한국일보에 ‘오은영의 화해’ 칼럼을 진행해 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오은영입니다. 언젠가 오프라인에서 따로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여러분, 저는 언제나 여러분들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마웠어요.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용기 내어 고백해준 수천 명의 신청자들, 150회에 달하는 그 많은 상담 내용을 매번 마음을 다해서 꼼꼼하게 읽어주신 수많은 독자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6년이 조금 모자라는 시간이었지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주마다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내어준 한국일보에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힘드네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은영의 화해’가 어느새 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어요. 어스름한 새벽빛 아래 스탠드 하나 켜고 앉아 신청자분의 사연을 읽어 내려갈 때면 어느 분이나 어떻게든 삶을 잘 이끌어가고자 하는 삶에 대한 사랑,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 등이 느껴져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했지요. 2주마다 며칠씩 반복됐던 이 소중한 일상은 저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 삶의 가치와 고귀함을 더 깊이 깨우치게 했습니다. 상처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시작한 ‘오은영의 화해’가 실은 저에게도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2016년 여름의 끝자락, 인터뷰차 만났던 한국일보 기자분이 상담 칼럼을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직접 만나지 않고 서면으로만 하는 1회성 상담이어서 여러 가지 걱정들이 떠올라 주저했습니다. 고민 끝에 “한 번 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면서 사연을 보낸 개인에게도, 그 상담 칼럼을 읽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큰 틀에서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사연자의 고민을 다루면서 우리는 힘들 때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회복해나가야 하는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가 등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타인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결국 자신 안에서 편안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신문에는 기분 좋은 소식보다는 대개 ‘사건 사고’라는 놀랍고 걱정스러운 소식들이 많습니다. 기사는 늘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다보니 ‘마음’에 대해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신문을 읽다보면 마음이 지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신문을 읽는 것도 ‘사람’입니다. 신문의 어느 한 공간만큼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따뜻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회성이 아니라 마치 마음의 베이스캠프처럼 지치고 힘들 때 찾아와서 조금 힘을 얻고 가는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오은영의 화해’는 실제로 많은 분들에게 그런 공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감정 아이콘이 1,000개 가깝게 눌리고 댓글 또한 몇백 개씩 달릴 때가 많았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뜨거운 반응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례자를 위로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면이라는 공간 안에서 표현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면서 ‘공론화’되기도 했어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사례자를 위로하고 공감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다양한 의견이 좋았습니다. 생각이나 감정들이 거칠게 표현될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그분들이 ‘오은영의 화해’만큼은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표현하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공간에서 사례자에 대한 공격이 좀 많아졌습니다.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어요.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은 좋지만 사례자를 공격하게 되는 상황은 점점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례의 고민은 대부분 아주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 상처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 상담을 받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사례를 보고 ‘이런 면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해 용기를 내어준 면이 큽니다. 그런 귀한 마음이 상처받는 일이 많아졌어요. 인간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은 지금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공간으로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변화해갈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용기를 낸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이 더 아파져서는 안 됩니다. 하여 지금은 좀 멈추고 여러 가지를 점검한 후에 다른 형태의 공간을 고민해보려고 해요.

아직 다루지 못한 많은 사연들이 눈에 밟힙니다. 그 사연들을 어떤 마음으로 써서 보냈을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했는지, 얼마나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지가 눈에 보이는 듯해 마음이 아프네요.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많이 고민하여 좀 더 안전한 형태로 여러분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꼭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오은영의 화해’를 통해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너무 미안한 당신들에게 진심을 다해 마지막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상처가 맞습니다. 남들은 뭐라고 하든 상처받은 마음은 그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어려움과 아픔이에요. 충분히 아파할 만합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마음의 큰 상처는 대개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해요. 그 상처가 점점 커지면 너무 힘이 듭니다. 특히 미성년자일 때 받았던 상처는 어른이 주기 때문에 정말 속절없어요.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사랑도 주지 않았다면 자식에겐 상처가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상처도 있습니다. 사랑해서 잘 되라고 하는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되기도 해요. 상처를 준 어른은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일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상처를 계속 간직하고 키워만 가다보면 그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너무 안타깝게도 당신에게 중요한 그 어른이나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가, 당신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걱정입니다. 자신을 싫어하게 될 정도로 상처를 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그 마음이 든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내가 나를 싫어하게 되면,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나조차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자신을 너무 괴롭게 합니다. 정말 어렵겠지만 저는 당신이 상처에서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이 받았던 상처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고,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들이 만들어준 모습이 아니라 당신이 느끼고 당신이 바라는 ‘자신’을 제대로 보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는 당신이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그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당신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결국 ‘나’ 때문인 것이 아니라 마침내 ‘나’입니다. 상처를 주던 그 삶은 마무리를 지으세요. ‘마침내’ 당신의 주인은 오롯이 당신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당신이 당신 자신의 열쇠입니다.

나의 상처를 한 발 떨어져서 제대로 보려면, 그 상처를 꺼내야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보내지 않을 편지라도 당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써보세요. 당신 편만 드는 편파적인 일기도 괜찮습니다. 편안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상처를 고백해 봐도 좋아요. ‘내가 왜 이렇게 상처를 받았을까?’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고 귀해요. 그런데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태어나서 왜 이런 일들을 겪게 되었을까요? 왜 나는 이런 마음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적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부분이 생기면, 그 상처 또한 잘 겪어가게 될 겁니다. 내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직면이 당신의 살아갈 힘이 될 거예요.

‘그런 걸로 제 깊은 상처에 도움이 될까요?’ 묻고 싶을 수 있습니다. 맞아요.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일대일 상담도 개인이 자신을 성찰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일회성이었지만 ‘오은영의 화해’ 사례자분들 중에는 그 몇 자 안 되는 상담이 자신한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 메일을 보낸 분들이 많았어요. 자신의 상처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각도를 조금 틀자 여러 가지 마음들이 좀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은영의 화해’에 적었던 조언들은 사실 인간의 이해를 위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청서를 적고, 조언을 읽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그분은 자신을 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변화의 첫걸음입니다. 어쩌면 조금 변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지 몰라도, 첫걸음은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의 부모, 가족, 배우자, 자녀, 의미 있었던 사람들 모두 소중해요. 그런데 결국 이 모든 것의 열쇠는 ‘나’예요. 그들이 설사 바뀌지 않더라도 늘 나를 똑같이 대한다고 하더라도 나만은 나의 변화를 통해서 나를 안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라는 채근은 아니에요. 나의 변화는 나를 이해하지 않았던 내가 나를 알아감으로써 관점이 조금 달라지고, 느끼는 것이 조금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것이 마침내 나를 잘 지켜가는 힘이 될 거예요. 여러분,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다음 회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생각과느낌 원장이 상담 코너를 시작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oh-counseling)에서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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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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