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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돕는 자살, 과연 존엄한가

입력
2022.08.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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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이 태부족이어서 24.3%만 혜택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말기암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이 태부족이어서 24.3%만 혜택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부터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태어날 권리는 내게 없지만 죽을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조력 존엄사(의사 조력 자살ㆍPhysician-Assisted Suicide)’를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조력 존엄사는 미국 10개 주ㆍ스위스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ㆍ캐나다ㆍ호주 빅토리아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요청하면 의사 조력을 받아 삶을 스스로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달에는 국회 공청회까지 열릴 예정이어서 조력 존엄사 허용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82%가 찬성했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 보장’ ‘품위 있게 죽을 권리’ ‘가족의 고통과 부담 감소’ 등의 이유로 여론은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해 종교ㆍ의료계 등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칫 생명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 존재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 명당 25.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보적인 1위다.

이런 현실에서 의사 조력 자살까지 허용하면 치료비가 없는 경제적 약자나 돌볼 가족이 없는 사람 등이 자살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존엄사를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 이미 2018년부터 심폐소생술ㆍ인공 호흡기 착용ㆍ혈액투석 등의 연명 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면 환자가 이를 중단할 수 있는 법(연명의료결정법)이 마련됐다. 불과 4년 만에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서에 서명한 사람이 13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의향서에 서명해도 법의 허점이 많은 데다 가족이나 의료진의 몰이해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도 태부족이다. 통증을 보살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이 전국적으로 67곳에 불과해 말기암 환자의 경우 24.3%(2019년 기준)만 혜택을 받고 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도 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폐질환(COPD)·만성 호흡부전·만성 간경화 등 5개 질환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곧 65세 이상 고령인이 1,000만 명에 달하는데, 기대 수명(83.5세)과 건강 수명(66.3년) 사이에는 무려 17.2년의 격차가 있다. 병든 채로 20년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앞당기도록 돕는 게 능사가 아니다.

‘존엄한 죽음’을 논의하기 전에 ‘존엄한 돌봄’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이다. 공공 병원 등 공공 의료를 확충하면서 호스피스 병상 수와 지원을 늘리고 돌봄과 간병도 공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환자에게 존엄한 치료와 돌봄을 충분히 제공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를 논하는 것은,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못하는데 미적분을 풀려는 격의 시기상조가 아닐까.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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